44人의 석학, 학문 장벽 허무는 ‘지적인 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대담을 나눈 세계적 지성들. 맨 윗줄 왼쪽부터 나탈리 제레미젠코·미셸 공드리·앨런 라이트먼·질 타터, 가운뎃줄 왼쪽부터 에드워드 윌슨·노암 촘스키·스티븐 핑커, 아랫줄 왼쪽부터 브누아 망델브로·알베르트라슬로 바라바시·레베카 골드스타인·피터 갤리슨. 동아시아 제공

사이언스 이즈 컬처 / 노암 촘스키·에드워드 윌슨·스티븐 핑커 외 지음 / 이창희 옮김 / 동아시아

흥미진진한 책이다. 에드워드 윌슨·노암 촘스키·스티븐 핑커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세계적 석학들이 진화철학·전쟁과 기만·자유의지·소셜 네트워크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1대1로 나눈 대담을 모았다.

책은 오늘날 지구촌의 지식인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가장 최전선의 학문적 이슈들을 망라하고 있다. 그것도 전혀 다른 분야의 전공자 두 사람이 짝을 지어 대담을 나누고 있어 더욱 생생하면서도 기발한 접근을 보여준다. 각 사안의 핵심을 다루면서도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상이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대화를 통해 구체적으로 전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책의 첫 대담록은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과 철학자 대니얼 데넷. 두 석학은 진화와 인류, 종교의 기원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인간의 마음에 대해 오늘날 우리가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데 공감한 두 사람은 이 문제와 관련, 학문 분야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인식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도 동의하고 있다.

윌슨은 “현재 존재하는 여러 학문 분야 사이의 경계를 어떤 장벽이라기보다는 널찍한 미지의 영역으로 보고 싶다”며 “인간의 마음에는 미개척지를 탐색하는 영역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데넷은 “이는 마치 두 척의 배가 나란히 서서 밧줄로 서로를 묶으려 하는 것과 같다”면서 “서로 상대편 배에 밧줄을 던지기는 했지만 배는 아직도 서로 삐걱거리며 부딪히기도 하고, 어느 곳에서는 밧줄을 너무 심하게 잡아당기기도 하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한마디로, 그동안의 학문이 서로의 전문 영역에서 ‘깊이’만 파고들었다면, 앞으로는 학문 간 통섭과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어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와 철학자이자 소설가인 레베카 골드스타인은 ‘의식의 문제’를 놓고 서로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골드스타인은 이렇게 지적한다. “인간이 지금 처해 있는 상황에는 고통스러우면서도 아이러니컬한 측면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음을 우리 스스로 억압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알아가고 있다. 마치 무엇인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이들 연산과정을 수행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이 왜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아는 것이 없다.”

이에 대해 핑커 역시 “의식이란 의심할 여지 없이 신경조직의 생리적 발현”이라면서도 “그러나 의식이 왜 신경조직 같은 느낌이 들어야 하는지는 설명할 수가 없다. 아마 마음이란 것이 그런 식의 설명을 이해하도록 작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결국 두 사람은 “생물학적 환경에서 진화한 마음이 그런 인지 능력을 활용, 초끈이론도 개발하고 스스로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알아낸다는 사실이 경탄스럽다”며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마음이 모든 것, 특히 스스로에 관해 파악하지 못하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라고 결론 내린다.

언어학자인 노암 촘스키와 진화생물학자인 로버트 트리버스가 ‘전쟁과 기만’이라는 주제로 나눈 대담도 눈길을 끈다. 이들은 기만의 두 측면, 즉 상대방을 속이는 것과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것에 대해 분석한다. 즉, ‘기만과 자기기만의 심리학’이다. 이는 집단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사람들은 나와 관련된 것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부정적인 것은 특정적으로 내용만 말하며,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그 반대로 행동한다”고 두 사람은 입을 모은다.

이 밖에도 예술가·물리학자·디자이너·건축가·무용가 등 다양한 지성인 44명이 나눈 대화를 담고 있는 책은, 각자의 영역에서 ‘공통의 주제’에 접근, 인문학과 과학의 장벽을 허무는 독특한 방식을 보여준다. 자신의 무지를 쉽게 인정하기도 하는 석학들의 진솔한 대화는 마치 옆에서 엿듣는 듯 생생하다. 한마디로, 오늘날 지성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