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식 규칙이 지배하는 ‘무협의 대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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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 중국 / 위양 지음, 서아담 옮김 / 학고재

‘강호 중국’이라니, 책 제목만 보면 무슨 말인지 모를 법하다. 얼핏, 실력이나 힘이 뛰어나고 강한 사람, 혹은 집단을 의미하는 ‘강호(强豪)’로 생각해 ‘강호 중국’을 ‘강한 중국’ 정도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내용을 톺아 보면 그렇지 않다. 강호는 강호(强豪)가 아닌 강호(江湖)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책에서 말하는 강호(江湖)란 무엇인가. 강호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쉽지 않지만, 강호는 체제 밖의 사회를 의미하고 강호화란 체제 밖의 강호가 체제 안으로 들어온 것을 뜻한다. 이렇게 볼 때, 강호 중국이란 강호화된 중국을 의미한다. 책에 따르면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조정 또는 정부를 묘당(廟堂)이라고 불렀고, 묘당 이외의 것은 강호라고 불렀다. 강호는 모든 비정부 조직, 지금의 비정부기구(NGO)를 가리킨다.

저자는 “강호 사회라는 것은 정통 사회도 아니고 정인군자(正人君子)의 사회도 아니며 정통 사회 바깥의 오합지졸이라는 것이다”며 “정통이나 정의와 거리가 멀지만 어느 정도 사회에 지배력을 행사한다”고 말한다.

이 책 ‘강호 사회’는 중국 사회에 뿌리 깊은 ‘강호’라는 개념을 통해 강호화된 중국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강호화를 일종의 사회 병리적 현상이라고 본다면 중국이 이 병에 걸린 지는 벌써 500년이 됐다. 중국이 국제경제 세계에서 제도 전환 과정 중에 소멸할 것인지, 아니면 변화 과정에서 자기 혁신을 꾀할 것인지는 강호화를 극복해 건전한 사회구조를 확립할 수 있을지, 새로운 가치 체계와 사회제도를 수립할 수 있을지에 달려 있다.”

중국 현대화 과정의 유교, 사회주의, 법치 제도를 설명하며 중국인이 자신을 이해하고 근대 역사를 반성하기 위해서는 강호를 망각하면 안 된다는 게 저자가 이 책을 쓴 취지다.

그렇다면 강호 사회가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저자는 중국 사회에 강호의 맹아가 싹트기 시작한 건 명대 중기, 대략 16세기 전후라고 말한다. 명대 중기 이후 농업 생산력의 상대적 감소로 중국 인구는 포화상태에 다다랐다. 특히 산시(山西)성, 푸젠(福建)성 등의 과잉 인구가 고향을 등지고 타향을 떠돌면서 대규모 유민이 출현했다. 유민들은 이곳저곳 떠돌았는데, 이는 명대 이전 5000년 동안 유례를 찾아볼 수 없던 일대사건이었다. 이후 300년 동안 인구 증가와 조절을 거쳐 청대 건륭제가 퇴위한 뒤 19세기 초반에 이르면 인구 폭증으로 강호 사회가 흥기하기 시작한다. 청대에 이르러 유교제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인구가 급증했고, 이런 위기 상황이 강호의 온상이 됐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20세기 초 청나라와 중화민국 교체기에 강호는 정통 질서를 철저히 전복하고 중국의 주도적 사회구조가 된다. 중국 사회의 전반적인 강호화 과정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처럼 강호의 개념과 역사를 설명한 저자는 강호인들이 중시하는 관계, 인정, 체면 등을 상세히 언급한다. 저자는 신세를 지고, 신세를 갚는 행위를 ‘오가는 인정’이라고 부른다. 일상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오가는 인정은 선물을 주고, 도움을 주고, 돈을 빌리고, 일을 부탁하는 일이다. 선물을 주고 일을 부탁하면, 선물을 받고 대신 일 처리를 해준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아름다운’ 정이지만 오가는 인정 사이의 핵심은 이익 교환인 것이다.

저자는 유독 중국인들만이 무협에 중독됐는지에 대해서도 강호로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무협의 문화적 모체는 강호다. 무협에서는 ‘협(俠)’이 우선이고 ‘무(武)’는 그다음이다. 이 두 가지가 하나가 돼 무공을 지닌 협객이 된다. 무협 이야기는 강호에 심취해 있는 사람들에게 백일몽을 선사해 자기 해탈과 승화를 경험하게 해준다. 꿈의 세계와 현실의 강호는 상호보완적이며 같은 정신세계에 속한다. 강호화가 진전될수록 무협을 숭배하고 무협 이야기도 유행한다. 무협 문화는 사회의 강호화와 밀접하게 관련돼 명대보다는 청대에, 청대보다는 중화민국 시기에, 문화대혁명 이전보다는 이후에 더 성행했다.

저자는 “전자와 후자를 비교해 보면 체제의 공백 상태와 무협 문화의 성행이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정식 규칙이 해이해지면 비공식 규칙이 성행하고, 비공식 규칙이 성행하면 무협 이야기가 유행했다”고 해석한다.

저자는 오늘날은 현대 법치가 강호와 힘겹게 게임하는 중이라고 말하면서도 현대 법치가 결국 승리할 것이라고 낙관적인 전망을 한다. 저자는 “법제가 강호를 이기려면 체제 경쟁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며 “식량, 임금, 복리 후생, 생활필수품 등의 영역에서 공급 능력을 향상시키고, 실업구제, 의료보험, 연금보험 등 법률 체제의 사회보장 능력을 강화하고, 제도 거래 비용을 낮추는 한편 시정(施政) 문턱을 낮춰 국민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체제 밖 불법 조직에 도움을 청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국의 부상과 함께 수많은 중국 관련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중국인으로서 중국의 사회문제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저자는 저명한 필자도 아니다. 더욱이 현대 법치가 강호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란 저자의 전망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강호’라는 개념을 통해 중국 사회를 통찰하고 비판한 점은 이 책의 존재감을 충분히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