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푼 ‘24節氣’… 문학·신화·역사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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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견문록:세시기에 담긴 한자의 문화인류학 / 임형석 지음 / 글항아리

오늘이 바로 1년 중에 가장 밤이 길고, 낮이 짧다는 동지(冬至)다. 중국 주나라에서는 이날 생명력과 광명이 부활한다고 여겨 동지를 설로 삼았다. 당나라 역법서(曆法書)인 선명력(宣明曆)에도 동지를 역(曆)의 시작으로 보았다. 동지는 24절후 중 스물두 번째 절기다. 동짓날엔 으레 팥죽을 먹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는 어디서 유래했을까.

이 책은 이 같은 24절기를 소재로 삼아 한자풀이로 재밌게 관련 지식을 전달하고 있다. 예컨대 동지죽(冬至粥)에 대한 설명을 보자. 저자는 “동지죽은 ‘동짓날 먹는 죽’이라는 뜻”이라며 “동짓날에는 으레 팥죽을 쑤어 먹으니 冬至粥은 ‘동지팥죽’을 가리킨다”고 운을 뗀다. 이어 “冬至라고 꼭 팥죽만 먹는 것은 아니다”며 “冬至에 팥죽을 먹는 것은 우리네와 일본”이라고 밝혔다.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 저자는 동지(죽)를 계속 한자로 표기, 자연스레 한자를 습득할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책은 한마디로, 한자와 세시기(歲時記)를 결합시켜 인문학적 지식을 전달하고 있다. 세시기란 ‘1년 중에 철따라 행하는 여러 가지 민속 행사나 풍물을 적어 풀이해놓은 책’이다. 하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세시기의 의미는 훨씬 넓고 깊다. 저자는 세시기를 ‘자연의 변모에 따른 시간의 율동을 인간에게 주는 이야기’라고 규정한다. 즉 세시기는 시시콜콜한 세상 잡사에 머무르지 않고, 문학·신화·역사의 핏줄을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자연의 변모에 무감각한 현대인에게 시간의 율동을 알려주겠다는 것이 저자의 의도다.

책은, 세시기의 특징에 맞게 각 장을 1년 365일에 맞게 체계적으로 구성돼 있다. 1개 챕터가 1년 중 ‘하루’를 의미하도록 했으며, 봄·여름·가울·겨울 4부로 나눠 각 계절의 해당 날짜 글을 골라서 읽을 수 있도록 했다.

가령 봄의 경우는 “봄 節氣는 立春(입춘), 雨水(우수), 驚蟄(경칩), 春分(춘분), 淸明(청명), 穀雨(곡우)입니다. 24節氣가 태양과 지구의 상관관계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節氣는 太陽曆(태양력)을 따릅니다. 歲時(세시)를 꼭 節氣로만 따지지는 않습니다만, 우리가 節氣를 큰 마디로 삼았기 때문에 太陽曆을 주로 사용할 것입니다. 다른 계절과 마찬가지로 봄에는 여섯 節氣가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책의 각 항목에선 우선 저자가 알리고 싶은 한자말을 표제어로 제시한다. 그리고 글자마다 뜻, 소리, 부수와 획수를 표시해 두었다. 본문에서도 한자를 우선 드러낸 뒤 괄호를 치고 한자말을 읽는 법을 한글로 제시하고 있다. 한자를 배워보자는 뜻에서다. 아울러 본문에선 표제어와 관련된 지식을 소개하고 풀이, 딱딱한 사전 같지 않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이 “한자 검정 시험에서 최고 등급을 받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강조한다. 즉 한자에 대한 어느 정도의 교양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미 수백, 수천의 글자를 아는 마당에 다시 한자 공부를 하자니 그렇고, 그렇다고 한문으로 된 옛글을 직접 읽자니 답답하기만 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좀 더 깊은 지식을 통해 한자 공부를 하자는 것이 이 책의 궁극적 목표라고 할 수 있겠다.

P.S. 책에는 각 계절에 등장하는 다양한 동식물이나 시문학 등과 관련된 풍부한 컬러 도판이 수록돼 있다. 저자의 설명과 최대한 일치하는 도판을 가려뽑은 정성이 돋보인다. 글을 읽고 난 후 그림을 보면 그 의미가 더욱 가까이 와닿을 것이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