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황제굴비 200만원, 20㎝는 5만원… 차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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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명절 때마다 백화점 판매 물량이 동나는 200만 원짜리 굴비세트(위쪽 사진)나 ‘유모차의 벤츠’로 불리는 노르웨이산 ‘스토케’(아래쪽) 유모차 선호 현상은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베블런 효과를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200만 원이 넘는 영광 굴비세트(10마리)가 있더라구요.”

서울 송파구에 사는 주부 이모(38) 씨는 최근 시중에서 판매되는 굴비세트 가격표를 보고 직원이 실수해서 ‘0’을 하나 더 붙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직원에게 확인한 결과 실제 판매가가 맞았다.

이 씨는 “서민 밥상에 오르는 굴비 1마리 가격이 20만 원이나 할 줄 몰랐다”면서 “소장용으로 보관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요리를 해서 먹으면 사라지는 굴비를 이처럼 엄청난 가격을 주고 누가 사 먹는지 궁금해졌다”고 말했다.

200만 원짜리 굴비세트는 한 마리의 길이가 30㎝를 넘어서 일명 ‘황제 굴비’로 불린다. 올 설(2월 10일) 선물로 이 제품을 판매할 계획을 세우고 있는 백화점 A사의 한 담당자는 이에 대해 “길이가 30㎝를 넘는 황제굴비는 적어도 10년 이상 자란 것”이라며 “희귀성 때문에 매해 명절 선물 판매 행사 때마다 일찍 동난다”고 말했다.

3일 문화일보가 시중에 판매되는 ‘황제’ 굴비세트(산지 영광·10마리 기준) 가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크기가 30㎝가 넘는 굴비 세트끼리도 유통 채널에 따라 가격 편차가 컸다. 대형마트 등은 100만 원 안팎에, 백화점 등은 200만 원 안팎에 판매하고 있었다.

20㎝ 안팎의 영광 굴비세트가 백화점의 경우 15만 원 안팎에, 대형마트 등의 경우 5만 원 안팎에 판매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었다.

유통 전문가들은 “경제성을 생각하면 200만 원짜리 굴비세트를 사 먹으려 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허영심을 자극해 비싸게 팔면 팔수록 더 팔린다는 취지의 경제 이론인 ‘베블런 효과’라는 관점으로밖에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베블런 효과는 가격은 오르는데 고가 상품의 수요가 줄지 않은 것을 말한다.

이처럼 베블런 효과는 패션·등산 및 캠핑용품·식품·유아용품 등 우리 소비생활 곳곳에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유통 전문가들의 공통된 얘기다.

경기불황에도 2010년부터 고성장을 거듭해 지난해에는 4000억 원 규모로 성장한 캠핑용품 시장도 베블런 효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비슷한 품질의 용품 가격이 브랜드에 따라 수십 배까지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텐트 내부와 바닥이 폴리에스테르 계열의 동일한 소재로 만들어졌고 바닥에 동일한 코팅 처리가 되어 있는 5∼6인용 텐트의 대표상품인 일본 스노우피크의 랜드록 TP-670 텐트와 국산 에코로바 헥사돔텐트의 가격은 8배 차이가 난다. 전자는 중국산인데도 184만 원이지만 후자는 국산인데도 23만 원에 불과하다. 그늘막의 경우에도 폴리에스테르 소재에 동일한 코팅을 통해 발수기능이 있는 스노우피크의 랜드 스테이션 프로타프의 경우 142만 원이지만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빅텐 쿨스크린 그늘막은 2만9000원에 불과하다.

천일염도 품질 차이가 크지 않는데도 제품별로 최고 29배나 가격 차이가 난다. 특히 갯벌에 비닐장판이나 타일을 깔고 그 위에서 채취한 장판염과 달리 갯벌 흙 바닥에서 직접 채취한 토판염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현상과 맞물려 가격거품 논란도 커지고 있다. 일부 토판염 브랜드의 경우 카드뮴, 납, 사분 등 불용분 함유량이 식품공전상의 최대 허용치보다 높은데다 오히려 칼슘, 마그네슘, 칼륨 등 미네랄 함유량은 장판염보다도 부족함에도 가격은 9.5배까지 비싼 경우도 발생했다.

해외 유명상품은 베블런 효과의 전형적인 사례다. 이탈리아 브랜드 프라다는 지난 한 해 동안에만 무려 세 번이나 가방·지갑 등의 판매가를 올렸다. 프랑스 샤넬 역시 최근 수년 동안 무려 다섯 번이나 가격을 올렸다. 일례로 샤넬 가방 ‘2.55빈티지 라지’ 가격은 2008년 300만 원대에서 올해 700만 원대로 두 배 이상 뛴 상황이다. 정상적인 경영 문맥으로는 이처럼 ‘묻지마 가격 인상’ 관행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아웃도어 시장도 ‘고어텍스 소재’ 로고만 새기면 타 소재 제품보다 무조건 30% 이상 높게 가격을 책정하는 관행이 굳어져 있다는 게 아웃도어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지난해 11월 국내·외 시민단체와 국제소비자기구테스트(ICRT)가 시중에 판매되는 유모차의 품질검사를 실시한 결과 국내에서 일명 ‘벤츠 유모차’라 불리며 고가에 판매되고 있는 노르웨이산 ‘스토케 엑스플로리(169만 원)’와 미국산 ‘오르빗 G2(145만 원)’가 품질 평가에선 6개 등급 가운데 4번째인 ‘미흡’ 등급을 받기도 했다. 반면 국내 제품인 ‘리안 스핀(69만8000원)’은 3번째 등급인 ‘만족’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김자혜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우리 사회에서 브랜드 유명세에 죽고 사는 ‘허세’와 ‘왜곡된 소비’가 큰 문제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 사회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큰 숙제”라고 말했다.

이관범·노기섭·최준영 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