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 신화 ‘잔치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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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성장 시대가 온다 / 리처드 하인버그 지음, 노승영 옮김 / 부키

“경제 성장은 종말을 맞이할까? 그렇다. 그것은 세상의 종말일까? 결코 아니다. 광산업자, 제조업자, 은행가, 광고업자, 유통업자, 투자가, 발명가의 꿈으로 시작돼 나머지 모든 사람의 악몽으로 끝난 유토피아 기획의 종말이 시작되었을 뿐이다.”

책의 내용을 웅변하는 저자의 말이다. 석유 에너지 고갈문제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저자는 우리가 알던 경제 성장은 끝났다고 단언한다. 다시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영원히 성장하는 체계를 구축했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수억 년에 걸쳐 화학적으로 저장된 햇빛을 뽑아내어 태워 버리는 것에 불과했다. 섬광이 번쩍하는 순간의 섬망일 뿐.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은 실은 예외였다. 예외가 정상으로 둔갑한 것이다. 값싸고 풍부한 화석연료의 시대가 저물면서 지속적 팽창이라는 환상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중략) 화석연료에 기반한 경제 팽창의 시대가 끝난 것이 사실이라면 신기루 같은 성장을 계속 추구하는 정책 입안자들의 노력은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헛된 안간힘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논리적 배경으로 이런 거침없는 주장을 펼까. 저자는 성장을 가로막는 주요 요인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화석 연료와 광물을 비롯한 주요 자원의 고갈 ▲자원 채굴과 이용으로 인한 ‘부정적 환경 영향’의 확산 ▲막대한 정부·민간 부채로 인한 금융 붕괴 등 세 요인이 개별적인 문제가 아니라 서로 어우러져 증폭되리라고 예측한다.

저자는 2010년 미국 멕시코만에서 일어난 딥워터호라이즌사의 원유 유출 사고를 단적인 사례로 거론한다. 석유 회사 브리티시퍼트롤리엄(BP)은 당시 멕시코만 석유 시추 시행사였고, 딥워터호라이즌은 시공사였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20년까지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40%가량이 해저에서 생산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석유를 계속 공급하기 위해선 해저 수㎞를 파 들어 가는 힘들고 위험하고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결국 석유 가격은 당연히 비싸지게 된다. 원유 유출사고로 엄청난 환경 비용이 발생한 것은 물론이다. 딥워터호라이즌 사고는 또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가 금융기관에 연쇄 효과를 미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보험회사는 심해 시추에 대한 보험료를 인상했고, 멕시코만의 지역 경제도 타격을 받았다. BP의 주가는 폭락하고 투자 이익도 감소했으며, BP에 투자한 영국 연금기금까지 타격을 입는 등 경제 전반에 악영향이 미쳤다.

저자는 이 밖에 2011년의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식량 폭등 등의 사례를 거론하며 저자가 말하는 세 가지 요인이 어떻게 세계경제를 뒤흔드는지 설명한다. 그렇다면 혁신을 통해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이에 대해서도 고개를 가로 젓는다. 책에 따르면 수년 전만 해도 석유의 대체재로 옥수수에서 추출한 에탄올이 주목받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관련 학자들 모두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재배에서 수확, 증류에 이르기까지 에탄올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에탄올이 연소하며 발생시키는 에너지와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책은 이처럼 고갈 자원을 다른 자원으로 대체하는 방법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이유, 효율을 아무리 높이려 해도 결국 수확체감의 법칙에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중국의 성장 데이터는 세계경제 성장이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반박 증거로 제시될 만하다. 중국 경제는 전 세계적 경제 침체의 와중에서도 해마다 9%가량 성장했으니 말이다. 저자는 그러나 중국 또한 더는 영구적 성장을 지탱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부동산 거품은 중국의 최대 현안이며, 금융 시스템에 여파를 몰고 올 전망이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수출 경제를 건설한 중국 경제의 문제로 미국 등 최대 고객들이 구매력을 잃고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저자는 최근 중국이 서비스 경제로 돌아서는 이유 중 하나는 자원과 서구의 소비 수요에 한계가 있음을 중국이 차츰 깨닫고 있는 방증이라고 해석한다.

성장이 멈춘 이후의 세계는 어떨까. 저자는 경제 성장이 멈추면 국내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부 의존이 심화되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줄어들고 감시나 민권의 제한 등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아울러 세대 간 갈등이 커지며 부의 불평등은 심화하고, 여성은 남성보다 더 큰 타격을 받고 팔다리의 힘으로 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시대가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내다본다.

저자는 부채와 자산을 일정하게 감축하는 헤어컷과 채무에 기반을 두지 않는 대안 화폐, 공동 안보 클럽 등을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곰곰이 살핀다. 저자는 무엇보다 공동체의 복원을 역설한다. 석유가 고갈되면 기존 운송 수단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국지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웃과 소통하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가 더는 성장할 수 없는 이유를 치밀하게 분석하며 경제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점은 책의 돋보이는 면이다. 하지만 그보다 그동안 강조돼 온 양적인 성장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을 주장하는 저자의 목소리는 많은 공감대를 형성할 만하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