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상황이 인간 행동 결정짓는 ‘보이지 않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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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의 선택을 좌우하는가 / 샘 소머스 지음, 임현경 옮김 / 청림출판

1999년 미국 전역에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발생했다. 뉴욕시 지하철 안에 한 남성이 무려 3시간 동안 사망한 채로 타고 있었던 것이다. 지하철이 뉴욕 브롱크스에서 스태튼 아일랜드 페리까지 두 번이나 왕복한 3시간 동안 아무도 사람이 죽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대부분 ‘인정머리 없는 뉴요커’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저자는 이 사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만약 ‘사건이 발생한 한 시간 후에 당신이 그 지하철을 탔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다시 말해 지하철을 탔는데, 웬 거구의 남자가 술냄새를 풍기며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면? ‘당신이라면 과연 그의 어깨를 흔들어보거나 그에게 말을 걸어 괜찮은지 확인해 봤겠느냐’는 것이다. 더욱이 지하철에는 이미 타고 있었던 승객들이 있지 않은가. 다른 승객들이 더 오래 지하철에 타고 있었으니 주변 상황에 대해 그들이 더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이 책은 ‘상황의 힘’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황의 힘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행동을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바로 상황이며, 여기에서 각 개인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실험 등을 통해 보여준다. 앞서 든 지하철 사망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들은 군중 사이에 있으면 책임감을 덜 느낀다.

위급 상황에서 누군가를 돕는 행위는 그가 선한 사람인지 아닌지보다 주위 군중의 숫자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 군중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책임감은 더 분산돼 누구도 쉽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더욱이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것 같은 지하철 승객을 깨우거나 연인들의 사적인 말다툼에 끼어드는 행위는 복잡한 상황에 휘말릴 위험까지 있다. 따라서 ‘주위에 다른 사람이 있다면 구태여 내가 나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상황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인간 본성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대부분 틀렸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생각보다 주변 환경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나아가 “상황이 인간의 본성에 끼치는 진정한 영향에 대해 알게 되면 삶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고 단언한다.

예컨대 ‘왜 권위에 순응하고 집단에 동조하는 걸까’라는 의문에는 ‘가장 상처를 덜 받는 행동은 집단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게 정답이다.

또 ‘남자와 여자는 운명처럼 사랑하고 결혼하는 걸까’라는 질문에는 ‘가까운 곳에 있는 익숙한 사람을 사랑할 확률이 훨씬 높다’고 답한다. 최근 대통령 선거를 치른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게 와닿는 대목도 있다. 즉, ‘상대편의 치명적 약점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내 편이 아닌 후보의 단점이 더 커 보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심리학 책들이 마음과 뇌가 인간 행동을 지배한다고 주장하는 데 비해 이 책은 ‘외부 환경에 따라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새롭다고 할 수 있다. 책을 통해 스스로의 느낌과 감정조차 주위 상황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뚜렷이 파악하게 되면 좀더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상황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