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간 누명 마키아벨리… 그는 ‘약자의 수호자’였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베키아 궁전 벽에 걸려 있는 마키아벨리 초상화. 마키아벨리가 ‘늘 생각하는 현자’의 인상이었음을 잘 보여주는 초상화라는 해석도 있다. 21세기북스 제공

마키아벨리 / 김상근 지음 / 21세기북스

‘마키아벨리는 전혀 마키아벨리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권모술수의 대가’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안(Machiavellian)이라는 이름 자체가 ‘권모술수에 능한’이라는 형용사로 쓰이고 있다. ‘더러운 술책으로 출세하는 방법’에 관해 쓴 교활한 인간이라는 마키아벨리의 기존 통념을 뒤집는 책이 나왔다. 저자는 마키아벨리가 ‘약자들의 수호성자’로 그들의 삶에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마키아벨리는 어린 친척이 고아가 됐을 때 자기 식솔도 잘 돌보지 못하면서 그 아이를 입양해 호구책을 마련한 휴머니스트였다. 책은 마키아벨리를 예리하게 관찰하면서 약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지략이 모자라기 때문에 힘들어 하는 대중들에게 ‘더 이상 당하지 않고 사는 법’을 알려 준다. 그것은 ‘담대하게 인생을 마주하고 탁월함으로 무장하라’는 메시지인 동시에 마키아벨리가 고난에도 굴하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했다.

저자는 탄탄한 인문학적 성찰을 바탕으로 마키아벨리의 철학을 새롭게 통찰하고 있다. 그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라는 책의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 마키아벨리 연구를 위해 2011년에 7000㎞를 달리고 또 달렸다고 한다.

저자는 일종의 음모론까지 제기한다. 마키아벨리의 책은 철저하게 약자의 입장에서 약자를 위해 집필됐는데, 이 책의 가공할 가치를 알아본 그 시대의 강자들이 다른 사람들이 읽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마키아벨리를 악의 교사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지혜와 통찰력이 두려웠기 때문에 강자들은 군주론을 몰래 혼자서만 읽고 싶어했다. 마키아벨리에 대한 억울한 누명, 불공정하고 잘못된 고정관념이 500년 이상 지속된 이유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이 당하고 있는 약자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을 살았다. 그 방식은 고전과 옛 현자들로부터 지혜를 얻는 것이었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를 이끌었던 수많은 지도자들과 로마 제국의 옛 현자들이 어떻게 시련과 위기를 극복해 나갔는지 묻고, 그들의 답을 자신이 감내해야 하는 약자의 삶에 대입시켜 그 해결책을 모색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키아벨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것이다. 어차피 포르투나의 힘에 의해서 우리 운명이 결정돼 있다면 탁월함과 용기, 즉 비르투스를 발휘해 한번 붙어 보라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운명에 맞서는 힘은 과단성 있는 결단에서 나온다고 거듭 강조했다. 저자는 군주론은 권력을 잡은 정치가들에게 권모술수를 가르치기 위해 쓴 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자기계발서는 더더욱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한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쏟으며, 애절한 마음으로 ‘군주론’을 썼다. 실직을 당한 전직 관료가 재취업을 바라면서 권력자에게 일자리를 호소하며 쓴 책이 군주론이다. 살아남기 위해 쓴 책보다 위대한 책은 없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책에 따르면 마키아벨리는 촌철살인의 익살꾼이었다. 1512년 메디치 가문을 전복하려는 음모에 가담했다는 소문 속에 그는 체포됐다. 그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이렇게 익살을 부렸다. ‘바르젤로 감옥 벽으로 이가 오밀조밀 기어다니고 있습니다. 토할 것 같은 역겨움을 일으키는 징그러운 이 동물은 나비처럼 살이 오동통 올랐군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코미디에 가까운 해학적 문장으로 창녀와 지낸 하룻밤의 애정행각을 써놓기도 했다. 자신이 애욕의 구렁텅이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점을 떠벌리면서 자신의 인간미를 과시했다는 것. 하지만 친구들은 마음씨 좋은 벗이 되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악용해 그의 돈을 상습적으로 떼어먹기도 했다.

저자는 “마키아벨리야말로 아픔과 좌절을 겪은 인물이지만 좌절하지 않고 이 세상 모든 약자들에게 생존의 용기를 가르쳤다”고 말한다. 군주론을 성찰한 뒤 저자는 세상의 약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 운명에 맞서고, 용기와 기개를 잃지 마라. 자신의 속내를 강자에게 알리지 말고, 일단 내 손에 무기가 쥐어지기 전까지 침묵과 위장으로 일관하라. 일단 내 손에 무기가 들어오면 그때는 아무 거리낌 없이 행동하라. 승리의 여신은 울보를 기억하지 않는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