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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파워인터뷰 게재 일자 : 2013년 01월 11일(金)
“中·日갈등, 한국엔 기회… 韓美동맹-對北해법에 활용하라”
오버홀트 하버드大케네디스쿨 선임연구원 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밴드
▲  윌리엄 오버홀트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12월 12일 서울 중구 소공동 조선호텔 앞 원구단 앞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2013년은 한국과 일본,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교체된 후 맞은 첫해이고, 국제적으로 커다란 기회가 생기는 해가 될 것”이라면서 “이같은 국제정세는 어려운 문제에 대해 큰 결정을 할 수 있는 정치지도자를 가진 나라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김연수 선임기자 nyskim@munhwa.com
▲  윌리엄 오버홀트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애시센터 선임연구원은 2012년 12월 11일 아산연구원 주최 ‘아산중국포럼’ 기조연설에서 “일본은 메이저 경제파워로 부상했다가 스스로 그 지위를 방기한 첫 국가”라면서 “일본은 글로벌리제이션과 시장경제를 통해 경제대국이 됐지만 1975년 이후 자기만족에 빠지면서 세계보다는 자국에 골몰하는 퇴행성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연수 선임기자 nyskim@munhwa.com
윌리엄 오버홀트(67)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애시센터 선임연구원은 1970년대 중반부터 한·중·일 3국에 대해 연구해온 동아시아 전문가다. 1980년대초 광주민주화운동 현장을 지켜본 뒤 일찌감치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 낙관했고 1990년대 덩샤오핑(鄧小平) 개혁개방정책을 보며 중국의 부상을 예측한 국제 전략가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말 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이 주최한 ‘아산중국포럼’(2012년 12월 11∼12일)의 개막 연설을 위해 방한했고 문화일보와의 인터뷰도 중국포럼 때 진행됐다.

―오랫동안 중국을 연구한 전문가로서 지난해 18차 중국 공산당 당대회에서 총서기가 된 시진핑(習近平)의 리더십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하십니까.

“시진핑 리더십은 좀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 상황이 쉽지 않은 데다가 정치적 변동이 요구되는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18차 당대회에서 상무위원을 9명에서 7명으로 줄인 것은 결정과정을 좀 더 쉽게 하기 위한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시진핑체제를 출범시키면서 좌파 마오주의자들을 제거했고, 동시에 개혁파를 수용하지 않으면서 상무위원 수도 줄였습니다. 이것은 어떤 위급한 일이 있을 때 당 최고지도부가 컨센서스를 조금이나마 쉽게 하기 위한 조치라고 봅니다. 신지도부는 중국체제가 정상이 아니라 위급한 상황에 처할 수 있는 상태라고 보고, 이번 지도체제 개편에는 그런 위급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봅니다.”

―시진핑 시대 한·중관계에 대해서는 낙관하십니까.

“이번 방한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바로 그것인데, 한국에서는 한·중 간에 경제적으로 긴밀하나 안보관계는 미약하다는 점을 걱정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중 간 경제 및 안보 이슈의 불균형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관리 가능한 정도의 긴장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시진핑 총서기가 갖고 있는 파워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또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과 비교를 하신다면.

“마오쩌둥(毛澤東)이 100의 파워를 가졌다고 가정할 때 덩샤오핑은 80, 장쩌민은 60, 후진타오는 40 정도였습니다. 시진핑은 앞으로 얼마나 갖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시진핑이 그 수준의 장악력으로 중국을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을까요.

“중국은 이제 어느 한 사람이 큰 파워를 갖는 시대가 아니고 리더들이 함께 결정하는 집단주의체제로 접어들었습니다. 이제 한 개인이 갖고 있는 파워는 그리 크지 않는 것 같습니다. 후진타오체제가 출범할 때는 중국 안팎의 환경은 시진핑 때에 비해 훨씬 우호적인 조건이었습니다. 또한 공산당 안팎에 후진타오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이 조직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중국인들은 주룽지(朱鎔基) 총리의 개혁에 아주 지쳐 있어서 후진타오의 리더십이 먹혀들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었습니다.”

―중국인들이 주룽지 총리시절 어떤 스트레스를 받았나요.

“주룽지 전 총리 시절 국영기업에서 5000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졌고, 일반제조업 부문에서도 2500만 명이 직장을 잃었습니다. 후진타오 주석은 주룽지 시대의 한계를 이해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경제적 개혁이 아니라 정치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던 시대였습니다.”

―지난번 인터뷰 때, 주룽지 전 총리가 한국의 경제성장과정에 대해 세세한 이해가 있었다고 했는데 그 이후 중국지도자에 대한 인식은 어떤 수준인가요.

“후진타오가 얼마나 한국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중요한 것은 중국이 더이상 한국에서 개발경험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장더장(張德江) 국무원 부총리는 북한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만, 중국 새 지도자들은 한국이 중국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 듯합니다.”

그는 지난번 인터뷰(문화일보 2011년 5월 31일자 6면 참조) 때 “덩샤오핑이 박정희 모델을 모방해 중국 경제개혁 모델을 만들었다”고 밝히면서 “그러나 요즘 지도부는 한국사례를 참고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이 자체적으로 자신들의 모델을 만들어갈 것으로 보십니까.

“현 단계 중국 리더십의 당면과제는 경제개혁인데 더이상 어느 나라의 경험에서 해법을 찾을 수준이 아닌 만큼 그들 스스로 찾아나가야 한다고 판단하는 듯합니다.”

―시진핑의 리더십과 관련해 실용적이고 개방적이라는 평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장쩌민 전 주석이 이상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라고 한다면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실용주의적인 인물입니다. 시진핑은 전임자들에 비해 따뜻하고 개방적인 인물입니다.”

―시진핑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인데.

“물론입니다. 외국지도자들도 시진핑의 개방적인 스타일에 대해 호감을 보이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후진타오는 나무토막처럼 딱딱한 이미지여서 외국 정상들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지 않았는데, 시진핑은 그에 비해 친화력이 높은 리더입니다.”

―중국의 덩샤오핑, 한국의 박정희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고 있는데 두 지도자의 리더십 핵심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두 사람은 우선 국가를 구한 지도자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국방비를 삭감해 경제에 투입했고, 마오식 이념에서 탈피해 경제발전에 매진했다는 게 핵심입니다. 박정희는 좌파 출신인데, 그런 좌파적 기반이 국민 전체에 대한 교육이나 평등주의적 사회정책을 펴는데 큰 영향을 미친 듯합니다. 박정희는 경제발전과 국민교육을 추진하면서 민주주의의 기반을 닦았습니다. 좌파 출신의 권위적 정치인이 민주주의 기반을 닦았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한국은 이런 바탕 속에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거치며 좌우파 간 국가적 화해를 하는 단계로 접어든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농민사회에서는 불가능합니다. 박정희는 산업화정책을 통해 중산층을 키우고 그것을 통해 민주주의의 길을 열었습니다. 나는 아주 오래전, 사형선고를 받은 야당지도자 김대중 구명운동에 관여한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 오늘날까지 한국은 참 놀라운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1970∼1980년대 아시아에서 박정희는 한국을 구했고 덩샤오핑은 중국, 장징궈(蔣經國)는 대만을 구해 좋은 나라가 되도록 했습니다. 한국의 오늘이 가능한 것은 나라발전의 기반을 닦은 박정희, 민주화의 기반을 닦은 김대중 덕분입니다.”

―1980년대초 김대중 구명운동을 한 뒤 감옥에서 풀려난 김대중을 만나셨는지.

“감옥에서 나온 이후 김대중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1982년 그가 옥중에서 석방된 후는 물론 대통령이 된 후에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당시 왜 그렇게 열심히 한국의 야당지도자 사면에 깊이 관여하셨는지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때문인가요.

“아시아 문제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로서 당시 나는 1960∼1970년대 박정희가 한국을 살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1970년대말 한국상황을 보면서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국면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에 대해 글도 썼던 적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대중적인 정치지도자를 사형시키는 것이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옳지 않고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재난이라고 봤습니다. 동시에 한·미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제 아버지는 감리교 신자인데 아버지의 그런 기독교적 신념이 내게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신념을 심어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즘 한국경제의 침체상황을 보면서 일각에서는 한국이 일본의 1990년대 장기불황을 답습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데.

“한국이 일본의 장기불황 역사를 반복할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한국과 대만은 시장경제로 전환하면서 경쟁적인 민주주의제도를 발전시킨 나라인 반면 일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본은 현대적인 경쟁적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실패한 나라입니다. 일본은 수많은 파워그룹들이 여전히 정치 경제에 개입하면서 그런 발전을 가로막고 있지만 한국은 다릅니다. 일본이 글로벌리제이션을 시작할 때 수많은 일본학생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미국엔 한국학생들, 나아가 대만 학생들이 일본유학생들보다 많습니다. 한국의 장점은 아주 경쟁력이 높은 정치제도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정치제도와 비교해볼 때 아주 다이내믹하고 경쟁력이 높은 정치제도입니다. 한국에서는 수많은 여성들이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데 일본은 그렇지 못합니다. 노동시장 개방에서도 일본은 한국에 뒤지는 상황입니다. 한국은 성공의 길, 일본은 실패의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에 대한 전망이 아주 어두운데 일본 회생의 길은 없다고 보십니까.

“일본의 역사를 보면, 일본은 늘 위기가 올 때까지 움직이지 않다가, 최후의 국면에 제3의 세력에 의해 개혁을 했습니다. 쇄국을 고집하다 1853년 페리 제독에 의해 개항을 결정했고 2차대전도 1945년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 의해 종료되며 전후개혁을 했습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부 때 전문가들이 “굿뉴스는 고이즈미가 금융위기에서 일본을 살려낸 것이고, 배드뉴스는 자민당시스템을 살려내 일본을 파국에 이르게 한 것”이라고 했던 적이 있는데, 일본은 변화의 필요성을 수없이 느끼면서도 못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福島) 재난 이후에도 일본은 수많은 이해관계 그룹들의 이해가 얽혀서 제대로 된 개혁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큰 재난을 당하고도 그렇게 개혁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나는 일본의 채권시장이 붕괴될까봐 두렵습니다.”

―그런 최악의 시나리오가 몇년내 도래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엔화를 무제한 찍어내겠다고 했는데 그런 재정 부양, 통화부양 정책을 지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지속 가능하지 못한 단계가 돼 붕괴될 것입니다. 아마 일본은 그런 연후에야 개혁을 하지 않을까 싶은데 현재 일본은 긍정적인 전망을 하기 참으로 어려운 상태입니다.”

―일본의 총선을 통해 아베 총리 2기 시대가 열렸는데.

“아베 총리는 물론 민주당까지도 마치 침몰국면으로 치닫는 타이태닉호라고 보면 됩니다. 지난 20여 년간 일본의 어떤 지도자도 세상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준 적이 없습니다. 일본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일본에 뛰어난 인재들이 수없이 많다는 점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일본의 톱 리더가 되지 못한다는 게 일본의 한계입니다.”

―2013년은 한·중·일 3개국의 리더가 모두 교체된 상태에서 시작되는데 동북아 정세를 어떻게 보십니까.

“2013년은 아주 커다란 기회가 생기는 해입니다. 오바마 1기 행정부는 북핵협상에서 완전히 실패했고 중국도 북한지원정책만 했을 뿐 제대로 설득하거나 변화시키는 데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북한의 새 지도자가 지금은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일정한 정도의 변화를 할 수 있도록 한국과 미국, 중국이 합의해서 일정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확신이나 보증은 할 수 없겠죠. 그렇지만 우리가 문을 열지 않으면 변화의 기회도 잃게 됩니다. 앞으로 아주 귀한 모멘트가 열리면서 변화의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럴 때 지도자가 유약하고 나이브할 경우 위험합니다. 정치 지도자는 어려운 문제에 대해 큰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2013년 정세는 그런 지도자를 가진 나라에 유리할 것이라고 봅니다.”

―청년시절부터 아시아의 경제성장과 민주화에 관심을 가져온 전문가로서 한국의 청년, 나아가 지식인들에게 주고 싶은 신년 메시지가 있다면.

“한국은 스스로의 힘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고 민주화를 성취한 아주 귀한 나라입니다. 이제 한국의 청년과 지식인들은 주변 아시아국가에 관심을 갖고 그 나라들을 도왔으면 합니다. 미얀마나 캄보디아 같은 나라는 한국의 도움이 필요한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미얀마의 상황은 아주 힘듭니다. 미국과 중국이 관여하면서 두 나라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들어가고 있는데 한국은 미얀마에 대해 많은 것을 가르쳐줄 수 있는 경험과 지혜가 있습니다. 중국이나 미국이 그리는 거대한 지정학적 계산없이 미얀마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발전시켜줄 수 있습니다. 더구나 미국이 선호하는 워싱턴컨센서스나 중국이 주창하는 베이징컨센서스는 한계가 많은데 한국은 경제발전 속에서 민주주의까지 발전시킨 저력을 미얀마에 전할 수 있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는 한국이 그간 이룩해온 경제개발과 민주화에 대한 아주 가치있는 지혜와 경험이 농축되어 있으니 이제 그것을 아시아에 전파해 줬으면 합니다. 미얀마에 그런 게 전수된다면 미얀마가 북한을 지원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은 미얀마를 통해 북한을 지원할 수 있는 이중적인 지원이 가능한 것이죠.”

―중·일 센카쿠(尖閣) 갈등이 전면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선택해야 할 지혜로운 길은 무엇일까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한국은 수많은 경제적 기회가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이 해상영토 갈등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에 훨씬 더 유용한 동맹국입니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해상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하고 그런 해상갈등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미국에 가르쳐줄 수 있습니다. 중국 문제가 나올 때마다 워싱턴에는 중국의 부상에 대해 공포를 갖는 기류가 강해집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시각은 좀 다를 겁니다. 한국이 일본과의 독도갈등을 겪는 것과는 별개로 중·일 해상갈등 속에서 한국이 양국과 국가적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지에 대한 확신이나 지혜를 미국에 전해줄 수 있다고 봅니다. 아울러, 한국이 중국에 북한문제를 함께 관리하고 평화적으로 윈윈할 수 있도록 하자는 식의 대화를 해나갈 여지도 많이 생깁니다. 중국의 동의가 없는 한 북한에 대한 어떤 시도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중·일이 갈등하고 있는 시점은 한국에 외교적 창이 좀 더 열리는 국면이고, 한·중이 좀 더 가깝게 북한 문제를 협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때라고 봐야 합니다. 중·일 갈등기는 아주 힘들고 복잡한 국면이지만 한국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렇다고 한·미동맹을 방기할 필요는 없는 것인 만큼 한·미 간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한·중관계를 심화시켜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 국면은 한국 주도로 북한문제를 풀 수 있는 기회이자 한국이 전략적으로 아주 유리한 시기입니다. 이런 복합적인 안보환경에 얼마나 한국이 잘 적응하고 상황을 전향적으로 이끌어 가느냐는 것은 한국의 새지도자와 그 리더십에 달려 있습니다.”

그는 인터뷰를 끝내면서 다시 김대중과 광주 문제로 돌아갔다. “너무 오래전의 일이어서 기억이 잘 안 나지만 1980년 이후 김대중을 만난 적이 없는 것 같다”고 재확인하면서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때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직접 현장을 방문했다면서 이렇게 털어놨다.

“뱅커스 트러스트에서 일할 때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는데 나는 위기대응팀장으로서 광주에 급파됐습니다.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총칼에 희생됐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모든 병원을 방문했죠. 누구도 얘기하기를 꺼려해 제가 직접 광주지역의 모든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의사들이 말한 희생자 수를 합치니 1250명이 되더군요.”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졌다. 30여 년 전 광주에서 만났던 수많은 의사들, 그리고 시민들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내 앞에 앉아 당시를 회고하는 반백의 노신사는 말을 멈췄지만 그의 시선은 30년 전 그 현장으로 향하는 듯했다. 그의 눈빛은 기억의 저편 속에 묻어뒀던 청년시절의 열정을 되살려낸 듯 밝게 빛났고 그는 엷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터뷰 = 이미숙 국제부장 musel@munhwa.com


▲1945년생 ▲하버드대 및 대학원 졸업, 예일대 박사 ▲허드슨 연구소 연구원, 뱅커스 트러스트 애널리스트, 랜드연구소 아태정책센터 소장 ▲ 저서 ‘아시아 핵의 미래’‘중국의 부상’‘지정학의 변환’ 등 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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