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은 책 속에서 ‘변화된 나’를 만나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은 몇 번을 읽어도 재미있는 소설로 유명하다. 18세기 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사랑과 오해에 관한 영화 ‘오만과 편견’의 한 장면. 문화일보 자료사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리리딩-깊이읽기의 기술 / 퍼트리샤 마이어 스팩스 지음 / 오브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이 최근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 화제가 됐다.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 관객이 500만 명을 돌파하면서 이 소설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 소설은 1914년 ‘너 참 불상타’라는 제목으로 압축된 줄거리가 일제강점기 때의 잡지 ‘청춘’에 소개됐다. 이처럼 일찌감치 한국에 상륙한 이 소설 ‘레 미제라블’을 완역본으로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1840년대 사회사를 아로새긴 방대한 이 책에 대해 100년 가까이 오해·오독해 왔던 것이다.

세계적인 음악가 진은숙은 성인이 돼서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처음으로 접했다. 캐럴의 이 책을 읽고 이 소설과 자신의 꿈의 세계가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이를 두고 “내 일상적인 인생에서 알아왔던 그 어떤 것보다 훨씬 실존적 차원의 경험”이라며 이 책이 단순히 동화로 읽혀지는 것을 경계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어린 시절의 기쁨과 더불어 자아와 정체성에 끊임없이 부딪혀 나아가는 주인공 앨리스에게서 데카르트의 명제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철학적 명제를 도출했다. 영화가 히트하고 난 뒤 레 미제라블을 다시 읽는 사람들처럼 책을 다시 읽으면서 발견의 기쁨을 찾는 사람이 많다. 저자는 19세기 소설 중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사랑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여러 차례 만들어진 제인 오스틴의 책을 다시 여러 번 읽으면서 작가가 독자와 등장인물 사이에 심어둔 아이러니와 도덕적 오류의 함정을 찾아냈다. ‘오만과 편견’에서 타인에 대한 동정심을 통해 느끼는 감정적 깊이와 교류가 문명의 토대를 제공한다는 것을 성찰한다.

하루에도 몇 백 권씩 수많은 신간이 쏟아져나오고, 직장에서,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읽어야 할 책들도 많은데 왜 우리는 굳이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것일까? 이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던 한 영문학 교수가 은퇴 후, 자신이 읽었던 소설들을 다시 읽는 1년짜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 빠져들었던 어린이책부터 만인의 사랑을 받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동시대 소설들, 교수로서 읽어야 하는 책과 온전히 재미를 위해 읽는 책들을 망라한다. 그 과정에서 저자가 발견한 사실은 놀라웠다. 시대를 대변하는 목소리라고 믿었던 책들이 유치하고 어리석게 느껴지는가 하면, 현학적이고 사변적으로 느껴졌던 책에서 진실을 담은 울림이 느껴졌다. 반대로 강의를 위해 성인이 된 뒤에 여러 번 읽었던 ‘나니아 연대기’는 평점을 낮게 줬다. 이 책은 처음 읽었을 때 큰 기쁨을 주지만 되풀이해 읽게 되자 점차 그 매력이 상실돼 간다는 것. 등장인물들에게는 개성이나 큰 차이가 없으며, 시리즈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예측 가능해졌다. 그는 1960년대를 대표하는 책 ‘황금노트북’과 ‘성스럽고 세속적인 사랑기계’라는 두 책을 대비시킨다. 한때 여성주의와 냉전의 시대에 새로운 여성상을 그리려 했던 ‘황금노트북’에 심취했던 저자는 다시 읽기에서 자아 안으로 침잠하는 그 내면성에 개탄한다. 이와는 반대로, 1970년대를 떠올리며 선택한 ‘성스럽고 세속적인 사랑기계’는 등장인물들이 떠안고 있는 자기 몰입과 회피, 방종을 아이러니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저자의 탁월함에서 시대를 앞선 작품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저자는 다시 읽기가 우리에게 주는 하나의 법칙을 발견한다. 그것은 우리가 책을 다시 읽을 때 ‘안전함’을 원하지만, 결국 발견하게 되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변했는가라는 사실이라는 ‘안전과 변화’의 법칙이다. 저자는 “다시 읽기는 우리를 자극하면서도 달래고, 도발하면서도 안심시킨다”고 재치 있게 표현했다.

피상적인 책 읽기로 책의 전모를 파악했다고 자신하는 이 땅의 독자들이 꼭 읽어봄 직한 책이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