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입’아닌 ‘두뇌’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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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의 지배 / 존 앨런 지음, 윤태경 옮김 / 미디어윌

“인간은 두뇌로 음식을 먹는다. 인간이 음식을 먹는 행동은 음식 섭취와 소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음식을 먹는 행동은 의사결정과 선택을 수반한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해서 다 먹는 것은 아니고,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서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삶에서 음식은 칼로리와 영양 이상의 의미가 있다.”

책의 내용을 웅변하는 저자의 말이다. 미국 신경문화인류학자인 저자는 인간이 음식을 먹는 행동을 단순한 살기 위한 행동으로 보지 않는다. 동물이 생존 본능으로 먹이를 먹는 것과 달리 인간이 음식을 섭취하는 건 고도로 발달한 두뇌활동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책의 목적에 대해 “인간이라는 종이 어떻게 두뇌를 사용해 음식을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이 책의 원제는 ‘인간, 생각하는 잡식동물’. 저자에 따르면 인간 외에도 잡식동물은 있지만 인간의 잡식성은 단순히 무엇을 먹느냐의 문제를 넘어선다. “음식은 단순히 영양적 측면을 넘어서 암묵적, 명시적 의미와 중요성을 지닌 문화적 객체”라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누구나 한번 이상은 프라이드치킨이나 새우튀김, 감자칩 등에 끌린 적이 있다. 이들 음식의 공통점은 바삭바삭한 맛. 사람들은 왜 이런 바삭바삭한 음식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까. 튀긴 음식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저자는 인류가 바삭바삭한 음식을 좋아한 이유를 인간이 영장류에 속한 점에서 찾는다. 영장류의 식단을 조사한 결과, 많은 영장류들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바삭한 음식인 곤충을 즐겨 먹는다. 인류가 곤충을 먹던 시절부터 바삭한 음식에 대한 본능이 생겨 오늘날까지 전해져 왔다는 것. 지금도 여러 문화권에서 귀뚜라미, 유충, 메뚜기 등 곤충을 즐겨 먹는다. 인간이 불을 발명한 것도 바삭한 음식에 대한 선호를 높였다. 불이 발명된 뒤, 기존에는 먹지 못했던 동식물까지 먹게 되면서 바삭한 맛을 좋아하는 ‘생득적 선호’가 더욱 강화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뇌과학적 측면에서도 인간이 바삭한 음식에 끌리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바삭바삭’이라는 단어가 입안의 촉각과 청각을 자극해 메뉴 이름만 들어도 식욕 증가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사람들이 바삭한 맛에 끌리는 이유는 또 있다. 식품회사들의 대량생산과 활발한 마케팅 활동으로 오늘날에는 언제 어디서든 바삭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책은 이처럼 인지발달사, 진화사, 뇌과학, 문화사 등을 동원해 ‘인간은 두뇌로 음식을 먹는다’는 증거, 즉 인간의 입맛이 두뇌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여러 증거를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

음식과 성의 관계에 대한 설명도 설득적이다. “음식과 성의 관계는 언어를 통해 드러나고 강화된다. 실제로 성행위를 암시하는 단어에는 요리와 음식에 관련된 것이 많다. 음식을 먹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성행위는 보통 입술과 혀에서 시작해 하반신이 개입해 끝난다. 어쩌면 이런 해부학적 일치 때문에 사람들이 두 행위를 같은 단어로 표현하는지도 모른다.”

책에 따르면 브라질 투파리족은 성행위를 가리킬 때 ‘질을 먹고’, ‘남성 성기를 먹다’ 같은 표현을 쓴다. 브라질 남부에 사는 카잉강족은 ‘성교하다’,‘먹다’라는 뜻을 모두 지닌 동사를 사용한다. 저자는 또 일부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감정을 오르가슴에 비유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런 감정을 가리키는 ‘푸드가슴’이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푸드가슴은 ‘놀랍도록 맛있는 음식을 맛볼 때 느끼는 희열’로 정의된다.

같은 인간인데 프랑스인들은 대낮에도 코스 요리를 주문해 먹을 정도로 음식에 대한 집착이 강한 반면, 왜 미국인들은 프랑스인들처럼 음식에 시간과 돈을 들이고 느긋하게 맛을 음미하는 문화를 갖지 못할까. 프랑스와 미국은 현대적 국가로 탄생할 때 평등을 주요 건국이념으로 삼고 음식 문화 역시 평등 이념에 뿌리를 둔 공통점은 있지만 음식 문화의 발전 양상은 상이했다. 구대륙에 비해 식량이 풍부했던 미국에서 음식 문화의 평등은 사회적 격차를 줄이는 것을 의미했다. 미국인들은 맛보다는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데 의미를 뒀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맛을 평가하고 이를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이 사회계층 이동의 수단이었다. 이는 프랑스 문화에서 음식의 지위를 격상시켰고 음식 문화는 자연스럽게 복잡해지고 규범화될 수 있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음식은 인간관계의 촉매제 역할도 한다. 특히 상징적 의미가 담긴 음식이 그렇다. 음식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꼭 국경일이나 종교 휴일에만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음식을 먹으란 법은 없다.

저자는 또 인간이 왜 초잡식동물이 됐는지, 요리는 주로 여자가 맡았는데도 왜 세계적인 셰프의 대부분은 남자인지, 음식과 행복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등 음식을 둘러싼 여러 궁금증을 조목조목 풀어놓는다. 방대한 연구와 다양한 사례를 들어 각 문화권의 뿌리에서 비롯된 요리법에 대한 관점까지 짚은 책은 음식과 미각에 대한 전방위적 설명서로 부족함이 없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