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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3년 02월 12일(火)
“찌그러진 호박도 예쁜 구석 있듯… 누구에게나 빛나는 보석 있지요”
정지아 소설집 ‘숲의 대화’ 출간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  전남 구례에서 사는 정지아 작가는 “바람과 햇볕, 풍경을 보면서 삶을 반추한다”며 “사람들과의 관계도 도시보다 훨씬 더 깊게 맺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사는 게 뭔지’라며 혼잣말로 중얼거린 적이 있을 것이다. 왜, 사는 게 팍팍하고 고달플 때 이같은 말이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오지 않는가. 이처럼 인생에 대해 의구심이 들 때 펼쳐볼 수 있는 소설집이 나왔다. 최근 출간된 정지아(48) 작가의 소설집 ‘숲의 대화’(은행나무)다. 소설집에선 형형색색의 인생들이 그야말로 찬란하게 발하는 빛을 발견할 수 있다. 읽는 이는 거기에서 분명 위안과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모두 11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숲의 대화’는 비루하고 누추한 인생들이 말하는 ‘인생의 맛’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밑바닥 인생, 치매 노인, 중증장애인처럼 더 이상 떨어질 데 없는 ‘나락의 인생들’에서 인간의 존엄을 건져 올리고, 희망의 불씨를 찾아낸다. 그래서 수록작들은 겨우 견디며 존재하는 인생의 이야기를 쓰면서도 결코 음울하거나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존재의 고귀함을 역설하며, 삶의 의미를 복원하고 있다.

예컨대 단편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식물인간이 된 아들 곁을 지키는 노부부의 얘기다. 천금 같은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자 부모는 무려 23년간 아들의 재활을 위해 온 삶을 바친다.

의사도 포기한 아들 ‘경우’는 15년 전 기적처럼 눈을 떴고, 23년 만에 한쪽 팔을 움직인다. 이미 재산이 거덜 난 지는 오래다. 그럼에도 ‘아직 죽지 않은 아들’에 대한 노부모의 사랑은 눈물겹기 그지없다. 작가의 시선은 이렇듯 겨우 존재하는 사람들의 소박하고도 절박한 희망을 향하고 있다.

또 다른 수록작 ‘혜화동 로터리’는 내일을 기약하기 힘든 세 노인의 반세기 우정을 다룬 작품이다.

만석꾼의 자식으로 빨치산이 된 ‘최’, 미군 켈로(Korea Liaison Office) 부대원이었던 ‘박’, 프랑스 유학파 지식인이지만 반세기 넘게 박과 최의 술시중을 들며 그들의 온갖 넋두리와 회한을 받아주며 사는 ‘김’이 소설의 세 주인공이다. 서로 ‘삼류 켈로’니, ‘삼류 빨치산’이니 하며 티격태격 만담처럼 주고받는 최와 박의 대화는 소설의 백미다. 역사의 아픔을 잊지도 못하고 버리지도 못한 채 묵묵히 끌어안고 살아가는 세 노인의 모습을 통해 ‘인간적 연대’를 엿볼 수 있다.

작가는 최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04년 이전 작품들이 순정하고, 반듯하고, 올곧은 것에 주목했다면 이후론 보다 다양한 인간사의 모습들로 작품세계를 확장시켜 왔다”고 밝혔다. 그의 말대로 소설집 ‘행복’(2004)과 ‘봄빛’(2008)을 거쳐 세 번째로 내놓은 ‘숲의 대화’에선 작가의 작품세계가 보다 원융해졌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전남 구례에서 텃밭을 가꾸며 사는 작가는 “잘 생기거나 못 생긴 호박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는 것”이라며 “호박잎에 가려 있는 찌그러진 호박에도 예쁜 구석이 있다”고 했다. 천차만별 인생들 역시 제각각 빛나는 보석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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