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타인에 대해 책임이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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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너무나 기본적인 이 질문을 생생하게 던지는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오는 17일까지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아일랜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 겸 연극연출가인 아돌 푸가드 작품으로, 한국에선 1977년 초연된 이후 심심찮게 공연됐던 연극이다. 그동안 이 연극을 관람한 이들도 많겠지만, 이번 공연은 새로운 번역과 연출, 두 출연배우의 열연으로 또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우선, 연극 ‘아일랜드’의 기본 줄거리는 이렇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에 저항하다 체포된 죄수들이 모여 있는 한 섬을 배경으로 각각 종신형과 10년형을 선고받은 죄수 윈스톤과 존이 등장, 강압적으로 포박당한 자신들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치범인 존은 연극으로 저항하다 잡혀온 인물. 윈스톤은 경찰서 앞에서 시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현장의 ‘검둥이’와 얼굴이 똑같다는 이유로 수감됐다. 그들은 인권이 철저하게 짓밟히는 감옥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가족과 친구 등 바깥 세상을 애타게 그리워하지만 편지조차 받지 못한 채 자기들만의 놀이로 서로를 위로한다. 두 사람만의 연극을 통해 위안받고자 하는 것이다.

존은 윈스톤에게 안티고네 역을 맡아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한다. 하지만 여장을 하면 자신이 조롱받을 것을 알고 있는 윈스톤은 좀체 안티고네 역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 존의 간청에 못 이겨 잠깐 마음을 돌리기도 하지만 연습 도중 번번이 화를 내며 연극을 거부한다. 존의 속셈은 죄수 연회장에서 안티고네 연극을 공연함으로써 간수를 비롯한 힘 있는 자들을 조롱하려는 것. 그래서 윈스톤에게 끊임없이 연극을 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그러던 어느날, 존의 항소가 받아들여져 남은 형량이 불과 3개월로 줄어든다. 윈스톤은 부러움과 질시, 절망에 사로잡혀 울부짖는다. 그런 윈스톤을 쳐다보던 존은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깨닫고 갈등 끝에 안티고네 연극을 강행키로 마음먹는다. 연극을 통해 권력에 맞서는 개인의 자유를 소리 높여 외치기로 결정한 것이다.

연극 ‘아일랜드’는 결국 법과 권력, 국가를 한편으로 하고 그에 맞서는 개인의 삶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단순히 인종 갈등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조건’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죄수들의 좌절과 고통, 슬픔을 무대에 리얼하게 구현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극 중 ‘인간은 타인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대사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다뤄져야 할 금언이다.

연출을 맡은 서지혜 씨는 “‘아일랜드’는 시대를 통틀어 아우를 수 있는 인류애에 관한 연극”이라며 “새로운 것이 넘쳐나는 요즘 연극 속에서 오히려 생소하고 낯선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현실의 문제의식을 담을 수 있는 소재라면 끊임없이 탐구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공연은 연극배우 김장호 씨가 새롭게 번역한 대본을 서 연출이 오늘에 걸맞게 각색했다. 기존 문어체의 대사를 지양하고 실제 우리나라 감옥에서 들려올 법한 언어들을 구사, 현실감을 높였다.

여기에 최무인·남동진 두 배우의 리얼한 연기는 더이상 찬사가 필요없을 정도다. 지난해 여름 밀양연극제에서 ‘아일랜드’를 공연한 두 배우는 나란히 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그만큼 온몸을 던져 연기하는 배우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이번 공연은 게릴라극장에서 진행하는 ‘젊은 연출가전’의 첫 작품이기도 하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