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흑인 피카소’ 바스키아를 만나다

  • 문화일보
  • 입력 2013-02-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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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장 미셸 바스키아의 1986년작 ‘행진’. 국제갤러리 제공


요절한 흑인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는 1980년대 뉴욕문화의 전설이다. 거리화가 낙서화가 출신으로 그는 뉴욕의 스타 문화예술인과 교우하며 유명세를 치렀으나, 작품 활동기간은 8년에 불과했다. 1980년대 불꽃처럼 피어오르다 저버린 그의 삶과 작품세계는 줄리언 슈나벨의 1996년작 영화 ‘바스키아’를 통해 재조명되기도 했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막올린 바스키아전(3월 31일까지)에는 장 미셸 바스키아의 작품 18 점이 전시 중이다. 바스키아 개인전은 2006년 국제갤러리 전시 후 7년 만이다. 전시작 중 1981년작 캔버스 그림에는 적십자 표시의 흰 앰뷸런스 주변에 사이렌 소리처럼 ‘AAAA’라고 알파벳 A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1986년작 나무판 그림 ‘행진’의 경우, 해골을 높이 든 사람 앞으로 눈만 흰 검은 인물들이 줄지어 등장한다. 1982년작 ‘손 해부도’에는 중앙의 다섯손가락 둘레에 작은 왕관과 뜻 모를 알파벳 글자들이 적혀 있다.

거리화가라면 가난, 궁핍한 환경을 연상케 되지만 그는 부친이 회계사였던 중산층 가정 출신이다. 어린 시절 미술에 조예가 깊은 모친은 어린 바스키아를 미술관에 데리고 다녔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즐겼고, 사춘기 시절 가출 후 낙서 그림을 통해 발언하는 한편, 엽서 티셔츠에 그림을 그려 생활했다. 정식으로 그림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유년기에 모친이 사다준 해부학 책 등으로 독학한 신체드로잉 등을 바탕으로 독특한 표현기법과 이미지를 추구했다. 생전에 명성을 얻었고 작품도 팔았다.

그는 ‘흑인 피카소’로 불린 뉴욕문화가의 스타였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의 이면에서 약물에 의존하게 됐고, 결국 멘토 같았던 앤디 워홀이 사망한 지 1년 후 약물 중독으로 28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10대 시절 뉴욕 거리와 지하철의 벽에 스프레이로 그림을 그리며 활동했다. 20대 초반 일찌감치 뉴욕 화상에게 발탁된 뒤로 가고시안갤러리,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 주류 화랑과 미술관에서 작품을 발표했다. 22, 23세 때 독일 카셀의 1982년 도큐멘타7과 뉴욕 휘트니미술관의 1983년 비엔날레에 최연소 작가로 참여했다.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예술적·상업적 성공을 거머쥐었다.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 키스 해링과 공동작업을 펼치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또한 사이 톰블리, 잭슨 폴록 등 선배화가의 영향을 받아 신추상표현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을 아우르는 작품세계를 펼쳤다. 간결한 선, 강렬한 색의 작품에는 자전적 이미지를 비롯해 만화 낙서 해부학 등의 이미지도 즐겨 다뤘다. 야구선수 행크 에런, 흑인 지도자 맬컴X, 재즈음악인 루이 암스트롱 등 흑인 영웅의 이미지도 등장한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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