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결속력, 국가 아닌 ‘종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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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그레이스 / 로버트 D 퍼트넘·데이비드 E 캠벨 지음, 정태식 외 옮김 / 페이퍼로드

미국과 종교, 이 둘의 관계에 대해 파고든 책이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미국은 매우 ‘세속적인’ 국가이지만, 실제로 미국사회를 분석할 때 종교는 빼놓을 수 없는 요인 중 하나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민의 83%는 어떤 종류든 종교를 갖고 있다. 미국민의 40%는 거의 매주 혹은 그 이상으로 예배에 참여한다. 59%는 적어도 매주 한 번 기도하며 33%는 적어도 매주 한 번 종교 경전을 읽는다. 이쯤 되면 미국을 ‘종교 국가’라 부를 만하지 않은가.

실제로 세계 각국과 비교해볼 때도 미국의 ‘종교성’은 매우 두드러진다. ‘매주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의 비율을 따졌을 때 미국은 강력한 이슬람 국가인 이란보다 앞서 있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와 비교하면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영국·독일·프랑스는 말할 것도 없고, 이탈리아·캐나다 등도 미국보다 훨씬 뒤처진다. 일본·중국·러시아 역시 한참 아래다. 그렇다면 이처럼 미국의 ‘종교성’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종교가 건국 이래 미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선 미국사 전체와 종교 간 관계를 파고들지는 않는다. 단지 1960년대 이래 50년 동안 미국 사회에서 종교가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쳤으며, 역으로 종교가 미국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분석한다. 다시 말해 지난 50년간 미국에서 종교가 거쳐온 사회학적 지형 변화를 살피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미국인들이 종교적으로 ‘양극화’되었다는 점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점점 더 종교적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내몰리고 있다. 한편에는 고도로 종교적인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공공연히 자신을 세속적이라 말하는 비종교적인 사람들이 있다. 중간에 있는 온건한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현재 미국은 여전히 종교성이 높은 나라이지만, 대체로 높은 종교성의 이면에는 세속적 인구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춰져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상반된 결과를 낳았을까. 저자들의 논지를 좀더 살펴보자.

미국의 종교적 양극화는 부드럽게 전개된 필연적인 변화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미국 사회를 급격하게 뒤흔들었던 세 가지 변화의 산물이다. 첫 번째 변화는 1960년대의 성(性)적 자유주의의 등장이다. 성적 자유주의자들의 등장은 두 번째 변화를 촉발시켰다. 성적 금욕을 이상으로 삼는 보수적 종교, 특히 복음주의 개신교의 성장을 가져왔다. 한데 이 같은 신학적 보수주의가 정치적 보수주의와 결합하면서 종교는 공화당의 노선과 점점 더 깊이 연관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은 마지막 세 번째의 사회 변화를 낳았다. 바로 더 많은 미국인들, 특히 젊은 세대가 종교를 부인하는 현상을 가져온 것이다. 이들이 종교를 회피하는 이유는 종교가 보수 정치와 동의어로 취급되는 상황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만약 종교가 공화당과 동일시된다면, 종교는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 결과 높은 종교성에 반해 세속적 인구 또한 점차 증가하고 있다.

즉, 다시 말해 ▲성적 자유주의의 등장 ▲복음주의의 성장 ▲젊은 층의 종교로부터의 이탈, 이 세 가지가 지난 50년간 미국 사회에서 벌어진 가장 큰 종교적 지형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또다른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는 미국과 종교의 특징은 종교적 양극화와 함께 종교적 다원주의가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얼핏 상반된 진술로 들린다. 종교적 양극화, 즉 점점 더 양극단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데 어떻게 다원주의가 자리잡을 수 있을까.

그 대답은 미국의 종교가 매우 유연하고 유동적이라는 데 있다. 그런 유동성을 낳게 한 조건은 바로 미국의 헌법적 기초가 갖고 있는 특징 때문이다. 미국 헌법은 의회 혹은 정부가 어떤 종교도 편애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고 있다.

아울러 미국인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종교적 믿음을 실천할 수 있는 권리 또한 보장하고 있다. 국가가 ‘하나의’ 종교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과 종교적 자유가 광범위하게 인정된다는 사실이 미국에서 종교가 발흥할 수 있는 이상적 조건을 만들었다.

저자들은 미국에서 가장 방대하게 행해진 종교와 공공생활에 대한 조사에 근거, 매우 구체적으로 미국민의 종교 현황을 분석하고 있다. 우선 가장 큰 분포를 차지하는 종교인구는 개신교다. 전체 인구의 절반을 웃도는 개신교 신자는 다시 복음주의 개신교와 주류 개신교, 흑인 개신교로 나뉜다.

복음주의자를 ‘근본주의적’ 개신교인의 후손이라고 한다면 주류 개신교는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보다 자유주의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복음주의 개신교와 주류 개신교가 신학적 차이로 갈라졌다면, 흑인 개신교는 인종에 따라 구분된 미국 개신교 안의 세 번째 전통이다. 개신교에 이어 가톨릭 신자와 유대교인, 모르몬교 신자 등이 미국 종교 인구의 주된 집단을 이루고 있다.

저자들은 미국인의 종교적 윤곽 또한 소상하게 그리고 있다. 대략 간추리면 모르몬교 신자, 흑인 개신교인, 복음주의 개신교인 등이 가장 종교적으로 열심히 활동하는 그룹들이다. 또 종교성은 인종과 나이에 따라 크게 변하고, 성·지역·소득 등에 따라서는 비교적 영향을 적게 받는다. 이밖에도 미국 남부주 지역과 유타 주, 미시시피강 주변이 미국에서 가장 종교적인 지역으로 나타났다.

이 모든 요인들을 고려할 때 ‘가장 종교적인 미국인’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바로 미국 ‘남부 지역의 조그마한 마을에 사는 나이든 흑인 여성’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다양한 신앙 체계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 맞물려 있는 인간적인 관계망 창조에 주목한다. 미국에서 종교는 분열보다 통합을 지향하면서, 시민 결속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말로 미국이 신으로부터 받은 축복, 즉 ‘아메리칸 그레이스(American Grace)’라고 저자들은 결론내린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