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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뉴스와 시각 게재 일자 : 2013년 02월 22일(金)
北核 현실주의로의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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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국제부장

노무현 정부가 막을 내릴 무렵이던 지난 2008년 2월 하순 크리스토퍼 힐 당시 미국무부 동아태차관보는 김병국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내정자에게 북한 핵기술의 시리아 유출 정보를 전달한 적이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에 앞서 한국의 신구정권 외교안보 담당자들과 면담을 하기 위해 방한한 그는 새정부팀에 북한기술로 지어진 시리아 지하 원자로 관련 비디오도 보여줬다. 이 원자로는 2007년 9월 이스라엘 전투기의 폭격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인데, 당시 미국측은 시리아 파견 북측인사 사진까지 증거로 공개했다.

이 내용은 정확히 5년 전 오늘(2월 22일자 2면) 문화일보에 보도됐다. 그런데 이 문제는 곧바로 북한의 핵확산 논란에서 대북정보 유출사건으로 변질됐고, 대대적인 보안조사가 진행됐다. 끝까지 북한의 선의를 믿었던 노무현 정권은 북한의 명백한 핵확산 증거 앞에 침묵했지만, 이 사건은 이명박 정부가 북핵현실주의에 눈 뜨게 된 첫 계기가 됐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노무현 시대는 대통령부터 “북한의 핵개발에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는 말을 하고 다니던 때였다. 북핵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접으면 해결될 것이라는 낭만적 인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북한의 2차, 3차 핵실험이 이어지면서 북핵의 본질도 뚜렷해졌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시대는 대북 낭만주의가 퇴조하고 북핵 현실주의가 전면화된 시기로 평가될 만하다.

아산정책연구원이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북핵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최대 요인(39.9%)으로 꼽혔다. 강력범죄(34.0%)보다 무섭고 이명박 정부 초기를 뒤흔든 광우병 공포(1.8%)보다도 수십 배 무서운 것이라는 반응이었다. 북핵공포는 중국인들의 미몽도 깨우고 있다. 베이징(北京) 등에선 반북시위가 잇따르고 네티즌들의 북한 비판도 뜨거워지고 있다. 중국 지도부 내에서도 핵실험 이후 대북 비판론이 팽배해지고 있다.

북·중관계는 흔히 이와 잇몸의 관계로 묘사되지만, 최근 공개된 북·중 이면사를 보면 북한의 핵개발을 둘러싼 갈등은 끊임없이 반복됐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조너선 폴락은 저서 ‘출구가 없다’(No Exit)에서 북·중 수뇌부간 핵충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1980년대 초부터 덩샤오핑(鄧小平)은 ‘북한이 핵개발을 고집하는 한 미래는 없다’며 개혁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김일성은 ‘남북 격차를 만회하기 위한 수단이 핵’이라고 맞섰다. 1994년 덩샤오핑은 비밀방중한 김일성에게 다시 한번 핵포기를 호소했다. 그러자 김일성은 ‘내게는 비핵화 의지가 있지만, 내 후계자가 그런 의지를 가질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북한이 외부세계와 정상관계를 수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비핵화라고 믿었던 덩샤오핑은 김일성의 답변에 크게 실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후 덩샤오핑은 199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김정일을 만나지 않았고 대북지원도 줄였다.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제네바 북·미 핵협상을 타결했지만 남북 격차가 더욱 벌어지자 핵에 올인했다. ‘권력은 핵탄두에서 나온다’는 김정일의 망상이 핵과 북한체제를 분리 불가능의 상태로 만든 셈이다.

24일 막을 내리는 이명박 시대는 이런 북핵의 본질이 대중적으로 확인된 시기다. 그간 북핵은 더 위협적이 됐지만, 위협을 위협이라고 보지 않고 믿지 않았던 미몽에서 깨어나게 된 것만도 큰 진전이다. 박근혜 새정부는 이 같은 토대 위에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접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핵 해결의 길은 멀지만 본질이 드러난 만큼 문제풀이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갈 길이 멀고 험해도 명확한 로드맵이 있으면 해법은 쉽다. 이제 새롭게 시작하자. muse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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