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의 시대, 통합이 아니라 ‘협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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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리 / 처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 현암사

취업과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워킹푸어’, 겉보기에는 번듯하지만 빚에 허덕이는 중산층 ‘하우스푸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상징하는 말들이다. 어디 이뿐인가. 공동주택의 층간 소음 문제로 시비를 벌이다 살인까지 벌이고 ‘묻지마 범죄’도 하루가 멀다하고 벌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가족’과 ‘부족’의 이익만을 탐하는 1차원적 사회, 이기적이고 폭력적이고 냉소적인 사회에서 ‘투게더’, 즉 ‘통합’이 아니라 ‘사회적 협력’은 어떻게 가능할까.

뉴욕대와 런던정경대 사회학과 교수로 노동 및 도시화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저자는 이 책 ‘투게더’에서 사람들이 거리에서, 학교에서, 일터에서, 지역에서, 정치에서, 온라인에서 어떻게 협력하고 대화할 수 있는지 탐구한다. 저자가 찾은 협력의 역사적 사례는 길드의 작업장, 근대의 예술, 파리의 코뮌, 월스트리트의 노동자, 로스앤젤레스의 코리아타운, 페이스북의 ‘친구 맺기’ 등 다양하고 광범하다. 199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위자들이 2700개에 달하는 한국인 상점을 때려 부수는 등 폭력을 부른 원인도 짚는다.

저자는 ‘우리’와 ‘너희’라는 대립에 주목한다. 어느 날 저자의 손자가 다니는 영국의 한 공립초등학교 교내 방송에서 욕설이 난무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엿 먹어, 엿이나 실컷 처먹어, 왜냐하면 네가 진짜 싫으니까, 너네 패거리 전부가 진짜 싫거든!” 저자는 기겁했다. 이 노래가 그저 반항감을 표출한다고 환호한 아이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엿 먹어’의 가수가 오히려 조롱하려 했던 것은 ‘우리와 너희들의 대립’인데 말이다. 저자는 이 일화를 집단 간의 폐쇄적 유대감을 기초로 하는 부족주의가 현대 사회에 팽배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저자에 따르면 부족주의는 자신과 같은 사람과의 연대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공격과 짝을 지우기 마련이다. 폐쇄적인 유대감을 기초로 하는 적대적인 집단의식은 20세기에 이미 인류를 파멸시킬 뻔한 적이 있었다. 저자는 손자의 학교에서 벌어진 일을 통해 적대적 집단의식, 패거리의식, 부족주의가 만들어 놓은 너와 나의 대립이라는 파괴적인 구도에서 벗어날 대안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대안은 바로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가진 채 고립돼 있는 사람들을 한데 모으는 일, 즉 협력이다.

이 책은 그런 협력이 어떻게 하면 가능할지를 탐구하는 여정이다.

저자가 책을 통해 말하는 협력이란 타인에 대한 우리의 반응 능력이다. “‘투게더’에서 내가 초점을 맞춘 부분은 타인에 대한 우리의 반응 능력, 즉 대화를 나눌 때 남의 말을 듣는 기술 또는 작업 과정이나 공동체 활동에 그런 반응 능력을 실제로 적용하는 문제다.”

우리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또는 그들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할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에겐 서로를 이해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하지만 저자는 협력을 단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윤리적으로 긍정적인 특성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훌륭한 장인-과학자는 최고의 원자탄을 만드는 데 에너지를 쏟아붓겠지만, 강도 행각을 벌이는 사람도 그와 똑같이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이에 따라 저자는 타인에게 반응하는 의미의 협력을 하나의 실제적인 기술, 즉 실기(實技·craft)로 바라본다.

책은 모두 3부로 나뉜다. 각각 협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약해지며, 강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1부에서는 정치에서 협력이 이뤄지는 방식을 다룬다. 논의의 초점은 연대에 맞춰진다. 우리 대 그들이라는 대립적 구도가 현대의 정치적 지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2부에서는 협력이 약해지는 과정을 그린다.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이 심해지고, 권위와 신뢰가 모두 약해진 조직과 사회에서 새로운 유형의 자아가 출현했다. 바로 비협동적 자아, 개인주의라고 불리는 자아다. 특히 ‘경쟁사회’에서 약해진 협력을 다시 강화시키는 기술을 검토하는 3부가 눈에 띈다. 물건을 만들거나 수리를 하는 장인들이 몸을 통해 기술을 ‘체화’하듯 사회적 관계의 기술 역시 그 리듬을 몸으로 익힐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음 단계는 그 리듬을 실생활에 튀지 않게 자연스럽게 녹인 ‘일상에서의 외교’다. 여기에서 종교적·세속적 의례의 도움도 받아야 한다. 저자는 또 협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과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헌신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김홍중(사회학) 서울대 교수는 “세넷은 고전적 연대 개념과 구분되는 21세기적 협력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며 “그것은 타자에 대한 단순한 공감이 아니라, 거리를 둔, 지성적인 감정이입에 기초하며, 타자들과의 동일성이 아닌 차이의 조절과 이해에 기초하고, 변증법적 지양이 아니라 대화법을 통한 소통에 기초하며, 정치적 좌파가 아닌 사회적 좌파의 논리에 기초한다”고 설명했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