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공간 담아낸 무신론자가 지은 수도원의 ‘감동’

르 코르뷔지에 ; 언덕위 수도원 / 니콜라스 판 사진·글, 허유영 번역 / 컬처북스

프랑스 리옹 근교의 언덕 위 숲 속에 자리잡은 라투레트수도원으로 연중 순례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1950년대 리옹 도미니코회 알랭 쿠튀리에 신부의 의뢰를 받아 전망 좋은 풀밭 위에 수도원을 설계한 이는 20세기 건축거장 르코르뷔지에.

이 수도원은 종교 성지일 뿐더러 건축 애호가들 사이에선 건축명소로 유명하다. 무신론자였던 건축가는 전통적인 성당건축 양식에서 벗어나 콘크리트로 네모 반듯한 상자 형태로 수도원을 지었다. 자연 속 빛과 그림자의 어우러짐을 찬미하는 공간이다. 조각, 첨탑 등 종교적 장식품, 상징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라투레트수도원으로 건축기행을 시도한 저자는 대만 출신 사진가다. 대성당 등 서양의 종교건축을 카메라에 담아온 저자는 도미니코회 신부의 초청을 받아 수도원에서 3개월여 머물면서 관조한 건축거장의 빛과 공간을 사진과 글로 담아냈다. 촬영 후 즉시 확인 가능한 최신형 디지털카메라의 성능에 작가 특유의 탐색과 시선이 결합된 사진을 통해 르코르뷔지에의 걸작을 만날 수 있다.

외부와 격리된 수도원 깊숙한 곳에서 사진가는 빛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건축, 특히 탁월한 ‘빛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건축공간을 시각적 사진과 일기 같은 글로 펼친다. 자연광이 스며들어 한 폭의 추상화 같은 중앙 벽도와 벽면의 기하학적 선, 육중한 구리문 뒤로 드러나는 십자가, 흰 수도복 차림인 수사들의 일상…. 빨강, 초록 등 원색의 창틀, 커튼, 옥상 테라스의 풀밭과 노란 벽면이 회색 콘트리트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풍광사진을 통해 종교적 경건함, 명상적인 추상미술의 체험과도 맞닿은 감동이 전해진다.

이 책엔 저자가 순례한 르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 아시성당, 마티스성당도 등장한다. 건축 위주의 사진 160여 점과 더불어 르코르뷔지에에게 수도원 설계를 의뢰한 알랭 쿠튀리에 신부와 도미니코회에 대한 글도 담겨 있다.

‘르코르뷔지에의 빛과 공간을 잘 담아낸 역작’(사진가 배병우), ‘라투레트는 르코르뷔지에의 작업 전체를 통해 가장 아름다운 창조’(건축가 승효상) 등 국내 전문가의 추천사가 더해졌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