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투견판에 빗댄 ‘자본주의 탐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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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본주의 사회를 알레고리(우의·寓意)적으로 절묘하게 그린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9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하는 연극 ‘농담’(사진)이다.

극작가 정영욱 씨가 5년여 만에 선보이는 신작 ‘농담’은 남루한 투견장을 배경으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들끓는 욕망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다. 투견판과 그 주위를 맴도는 인간들을 통해 현대자본주의 사회의 ‘탐욕’에 대해 은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연극은 치열한 살아남기 경쟁으로 점철돼 있는 현대사회를 투견의 잔혹함과 끝장을 봐야 하는 특성에 빗대고 있다. 투견은 한쪽 개가 죽기 전에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이는 곧 생존경쟁의 사다리에서 자신의 발목을 잡는 사람을 떨어뜨려가며 올라가야 하는 현대인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연극은 은유적이고 풍자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대사들, 대사와 대사 사이의 침묵,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강렬한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인생의 막장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남몰래 투견을 벌이는 도시 한 구석. 투견장 주인인 이 씨는 부잣집 부인으로부터 뒷돈을 받고 자신의 큰 아들을 마약범으로 경찰에 신고한다. 부잣집 부인 아들을 대신해 팔아넘긴 것이다. 이 씨 밑에서 일하는 박 씨가 중국에서 사온 탈북녀 ‘칼멘’은 말을 하지 않아 중국인 취급을 받으며 모든 사건을 지켜본다. 칼멘은 이 씨가 아들을 팔아넘겼다는 사실을 이 씨의 둘째 아들 상수에게 넌지시 알려준다. 원래부터 형을 많이 따르던 상수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복수심으로 그를 고무대야 소금물에 절여 죽이려 한다.

극 중 인물들은 서로를 수렁에 빠뜨리고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친구가 친구를 배신하고, 남자는 여자를 겁탈한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죽여 텅 빈 투견장에는 주인 없는 개들만이 실려와 공허한 울음소리를 내며 끝난다. 김낙형 연출, 선종남·김학수·정인겸·하성광·백익남·백진철·신안진·우미화·이재인 등 출연. 02-758-2150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