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우두’를 시술한 사람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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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의료의 풍경 / 황상익 지음 / 푸른역사

서양 의학과 의술 가운데 조선 사회에 첫선을 보인 것이 바로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1749∼1823)가 개발한 우두술(牛痘術)이었다.

당시 조선에서는 여러 가지 전염병이 만연했는데, 특히 치명률이 매우 높았던 두창(痘瘡·일본식 병명으로 천연두)이 크게 유행했다. 조선에서도 인두술(人痘術)로 두창을 예방하는 노력을 했지만 사람의 두창을 사용하는 인두술은 소의 두창(우두)를 이용하는 우두술에 비해 부작용이 많았고 효과도 떨어졌다.

서울대 의대 교수인 저자는 우리나라에 서양 근대의학의 역사가 시작된 개항기(1876∼1910) 보건의료 환경의 변화를 다룬 책에서 우두술의 도입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는 인류가 겪어온 수많은 질병 가운데 인간의 힘으로 완전히 물리친 것은 지금까지도 두창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제너의 우두술 발견과 보급은 인류가 질병에 대해 처음으로 진정 효과적인 처방을 구사한 ‘근대화의 상징’이란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이러한 우두술은 조선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를 비롯, 서양 이외의 나라에서 서양 의술의 효능을 뚜렷하게 인식시키는 역할을 했다. 동아시아 3국 모두 우두의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을 만든 것이 새로운 의료인 양성 기관의 효시가 된 점이 이를 입증한다. 물론 정약용이 1828년 자신의 저서인 ‘마과회통(麻科會通)’ 부록을 통해 제너의 우두술을 조선에 처음으로 소개하고 있는 데서 당시 우두술의 시술 가능성을 점쳐 볼 수는 있지만, 설사 시술을 했더라도 그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들과 달리, 저자의 책은 철저한 사료 비판과 약 1000장의 사진자료 등 충실한 근거에 바탕을 둔 점이 특징이다.

우두술의 보급 등 한국 근대 의료 역사에서 지석영(1855∼1935)의 위상을 다각적으로 검토하면서도 1876년 개국 무렵 민간에서 우두술을 습득하고 시술한 사람으로 지석영 외에도 이재하, 최창진, 이현유 등 다수의 사람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개국을 전후해 누가 처음으로 우두를 시술했는지 지금까지의 자료로는 단정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오히려 지석영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별다른 관련도 없이 우두를 시술하고 보급했다는 사실에서 근대를 지향한 조선 사회 내부의 역동적인 흐름을 읽어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조선 정부의 근대 의학 도입 시도는 ‘널리 은혜를 베푸는 집’이란 뜻의 광혜원(廣惠院) 설립으로 일차 결실을 맺는다. 갑신정변의 주모자로 처형당한 홍영식의 저택에서 1885년 4월 10일 개원한 광혜원은 같은 해 4월 12일부터 26일까지 2주 동안만 사용된 뒤 제중원(濟衆院)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환자 진료의 뜻이 보다 명료한 제중원으로 이름을 고친 것은 단순한 개칭이 아니라, 소급해 개칭한 것이었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