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Zoom 인&아웃 >저승길 보여줍니다… 장례전문 용인 ‘예아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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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유리장 속으로 사람 모형의 행렬이 100m 정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행렬에는 20㎝ 크기의 토우 인물 1384명, 말 341필을 비롯, 가마 20채가 등장한다. 선두의 경기감사를 시작으로 구불구불 늘어선 전체 행렬을 관찰하려면, 수차례 유리장 앞뒤로 자리를 옮기며 널찍한 전시장을 순례해야 한다. 토우 인물들은 상복 차림으로 걷거나 말을 타고 있으며 만장을 들기도 한다. 일부는 빨강 노랑 파랑의 원색 관복 차림으로 뒤를 따른다. 왕의 상여인 대여와 견여, 왕실 귀중품을 실어나르는 채여, 제기를 실은 요여 및 행렬을 지켜보는 마을사람의 면면도 흥미롭다.

경기 용인시 백암면 예아리박물관(관장 임호영)에선 조선시대 정조의 국장 행렬을 미니어처로 재현한 ‘정조대왕의 마지막 행차’가 전시 중이다. 지난 4월 24일 개관한 이 박물관의 개관기념특별전이다. 1800년 정조 국장 행렬을 실제 크기의 8분의 1로 축소해 복원 제작했다. 박물관 측은 국장의 기록이 담긴 ‘정조국장도감의궤’를 바탕으로 주영하, 김소연 씨 등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완성한 국장 행렬을 일반에 공개했다. 흙으로 토우를 빚고 한지에 물을 들여 6000여 벌의 의상을 만드는 등 의상·소품 제작에만 1년이 걸렸다.

장엄한 국장을 전시장에 되살려낸 예아리박물관은 상장례(喪葬禮)문화를 재조명하는 이색 박물관이다. ‘예아리’는 ‘예(禮)가 있는 아름다운 울타리’를 뜻한다. 장례용품업체 ‘삼포실버드림’이 수십 년간 수집해온 국내외 장례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전통상장례를 연구하기 위해 건립한 공간이다. 인생의 통과의례면서도 께름칙하고 공포의 대상이던 상례를 전시 공간으로 끌어들이며, 삶과 죽음의 의미와 더불어 ‘웰다잉’을 일깨운다.

이 박물관은 한국문화관을 비롯해 세계문화관, 기획전시관 등으로 이뤄졌다. 한국문화관에는 정조 국장 행렬 및 목관, 수의, 지석, 명기, 상여 등이, 세계문화관에는 일본, 중국, 몽골 등 외국 상장례 유물이 전시 중이다. 기획전시관에선 비행기, 사자, 독수리, 양파 등 동식물 모양의 아프리카 가나 목관이 관람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예아리는 박물관 건립을 처음 추진한 창업주 임준 대표가 2006년 작고한 뒤 아들 임호영 씨가 유지를 이어 2대에 걸쳐 12년여 만에 개관을 이뤄냈다. 박물관 측은 전시와 별도로 유서 쓰기, 입관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일상 속의 장례 문화 및 ‘웰다잉’을 이끌고 있다.

신세미 기자 ssem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