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금평 기자의 컬처홀릭>빗줄기 속 자리 지킨 관객들의 자세 ‘감동적’

‘사람의 진짜 모습은 선택의 순간이 다가올 때, 나타난다’ 드라마 ‘추적자’에서 유력 대선 후보가 던진 말입니다. 그렇다면, 관객의 진짜 모습은 어떤 상황에서 드러날까요. 역시 날씨에 크게 좌우되기 쉽습니다. 야외 공연의 경우 조금 쌀쌀한 날씨는 견딜 만하지만, 세차게 내리치는 폭우에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나 자신을 건사할 건인가, 아니면 내 몸을 던져 아티스트와 한 몸이 될 것인가를 말입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비가 1시간 이상 계속되면 무대는 그렇다치더라도, 관객은 일부 마니아만 제외하곤 모두 비를 피하는 게 순서였습니다. 그래서 초라한 관객수를 두고 열정의 무대를 펼치는 아티스트를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요.

지난 17, 18일 올림픽공원 일대에서 서울재즈페스티벌이 열렸습니다. 17일 뙤약볕이 내리쬐던 황금같은 날씨와 달리, 18일엔 우중충한 기운도 모자라, 강하고 굵은 비가 수시간 동안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침 최백호와 박주원의 협연이 펼쳐지는 수변 무대로 자리를 옮겼더니, 예상보다 꽤 많은 인원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습니다.

박주원의 신들린 듯 묘기대행진급의 속주가 이어지자, 관객도 덩달아 그루브(리듬감)를 타며 즐겼습니다. 그렇게 몇 곡이 흐른 뒤 빗줄기는 ‘더 이상 공연하지 말라’는 암시를 보내듯, 더욱 거세졌습니다. 하지만 관객은 우산없이 우비만 걸친 채 자리를 꼿꼿이 지키며 원로 가수와 패기 넘치는 젊은 연주자의 협연을 주의깊게 지켜봤습니다. 노래 2곡을 끝낸 최백호는 “37년 노래 인생 동안 이렇게 멋진 관객은 처음 본다”며 “나도 비를 맞겠다”고 몇 발짝을 떼기도 했습니다. 음향 문제로 그가 무대 밖을 나오는 것은 실패했지만, 뮤지션과 1000여 명의 관객은 비라는 장애를 뚫고 한 몸이 되기를 결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오후 9시쯤에도, 비는 물러설 줄 몰랐습니다. 88 잔디마당에선 데미안 라이스의 1인 공연이 한창 진행중이었습니다. 빗소리에도 흔들리지 않는 서정과 우수의 목소리에 1만8000여 관객이 넋을 잃은 채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관객은 젖은 매트 위에 앉거나 스탠딩석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이 분위기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궂은 날씨에도 관객이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역시 뮤지션의 명품 공연에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관객이 혼연일체가 되는 진풍경은 쉽게 설명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흔히 한국의 공연 팬들은 세계 최고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관객이 빗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관람할 정도라면 정말 자타공인 최고의 관객으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뮤지션이 보여준 무대도 감동이었지만, 이날 보여준 관객의 태도는 그 자체로 더 감동이었습니다. 관객의 용기있는 선택에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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