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임금 현안, 정치력으로 풀라

김회평/논설위원

복잡하게 얽힌 통상임금 실타래는 노·사·정(勞使政)의 합작품이다. 노조가 실력행사로 과도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회사는 각종 수당을 만들어 땜질해왔다. 전체 근로자의 급여 중 기본급 비중은 겨우 54%다. 대신 이름도 희한한 수당들이 월급 명세서를 채운다. 현대자동차는 14개나 된다. 생산직일수록, 노조 힘이 강할수록 대개 리스트가 더 길다. 정부는 통상임금을 근로기준법 시행령에 모호하게 규정하고는 31년을 방치했다. 궂은 일을 떠안은 법원은 시행령의 ‘정기적·일률적’ 조항을 바탕으로 통상임금 범위를 넓혀오다 마침내 ‘상여금’이란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 이런 판에 박근혜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외국 기업인에게 “해결하겠다”고 덜컥 약속하면서 일을 더 키웠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이 20일 노사정 대화를 제의한 건 예상된 수순이다. 노사정이 결자해지(結者解之)한다면 더 바랄 나위 없지만, 현실은 비관적이다. 이유는 여럿이다. 우선, 자리 마련 자체가 힘들어 보인다. 노동계는 ‘상여금=통상임금’을 이미 획득한 권리로 본다. 굳이 나설 까닭이 없다. 둘째, 정부 입장은 다급하지만 과거에 비해 사정이 좋지 않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시절의 노사정 대타협에는 외환위기라는 변수가 작용했고,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의 타임오프·복수노조 타협 때는 ‘정치적 동지’ 한국노총이 협조했다. 지금은 우군(友軍)이 없다.

설령 협상 테이블에 앉힌들 노동계에 쥐어줄 게 여의치 않다. 그런 점에서 ‘정년 60세 의무화’는 아쉬운 카드다. 정년 연장이 노동계의 오랜 염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통상임금 난제를 풀어가는 이해 조정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정부와 정치권이 입법을 서두르는 바람에 빈손이다. 보다 근본적으론 대표성의 문제가 있다. 노조 조직률이 10%에 불과한 현실에서 노측 대표는 정규직 노조의 입장을 주로 반영할 수밖에 없고, 특히 통상임금 문제는 그들의 이해와 직결된다. 결국 통상임금이란 단일 이슈로는 노사정 대화가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통상임금·노사정 틀을 넘어서 논의 수준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임금체계 전반을 바로잡는 일이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기형적인 봉급 내역을 바로잡는 것은 필수다. 더 나아가 과도한 연공급(年功給) 구조도 손볼 때가 됐다. 노동연구원 조사로 55세 근로자 임금은 34세 이하보다 3배 이상이지만 생산성은 60%에 그친다. 외국에서 연령에 따라 이렇게 차이를 두는 곳은 찾기 힘들다. 같은 일을 하면 동등한 대가를 지급하되 숙련도에 따라 차등을 두는 직무급 형태로 점차 바꿔가야 한다. 당장 2016년부터 60세 정년제가 도입된다지만 기업 일선에서 반드시 지켜진다는 보장은 없다. 정년연장 정착의 선결 조건인 임금피크제가 입법 과정에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정년과 무관하게 조기퇴직이 성행하는 건 고령자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아서다. 연공급 구조를 개선하면 60세 이상까지도 더 일할 여지가 생긴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는 일하기를 원하는 더 많은 사람이, 더 오래 일하는 걸 바란다. 그 전제는 정규직 노조가 기득권을 조금이나마 내려놓는 것이다. 통상임금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 여력이 사라진다. 국내외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갈 수도 있다. 지금 일자리마저 위태로워지는 것이다. 고용 유연성을 높이면 비정규직·일용직·실업자 등 나머지 90% 노동약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갈 수 있다. 독일 폭스바겐의 노사는 2003년 해고하지 않는 대신, 임금 삭감을 수용하는 상생의 타협으로 위기를 넘겼다. 반면 한국의 기득권 노조는 오히려 해고요건 강화, 근로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고 있다.

임금체계를 바로잡는 건 박 대통령이 공약한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서도 해야 할 일이다. 현안 해결을 장담한 박 대통령이 직접 노동계 대표들을 만나 간곡히 설득하는 등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도 이미 이해관계의 한 축이 된 만큼, 정치권이 중재에 나설 필요가 있다. 마침 불합리한 임금체계 개선에는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제민주화에 앞서 노동민주화도 중요하다. 노동계의 갑(甲) 눈치를 보기보다 소외받는 90%의 노동약자 편에서 왜곡된 노사문화를 고쳐가는 게 정치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