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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3년 05월 24일(金)
나는 쓴다, 고로 저항한다
조선 후기 ‘문체반정’에 불복 페이스북트위터밴드구글
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는다 / 채운 지음 / 북드라망

조선 후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순위 조작을 위한 ‘책 사재기’가 없었던 때이니 정답은 간명하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열하일기는 알다시피 1780년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축하사절을 따라간 연암이 북중국과 남만주 일대의 풍습 따위를 기록한 책. 연암은 이 책에서 전통적 격식의 둔하고 무거운 글을 버리고 소설 문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다. 서민들의 비속어까지 거리낌 없이 썼고, 해학과 풍자를 더했다. 책이 나오자 조선 지식인 사회는 열광했다. 선비들은 밤을 새워가며 필사해 돌려 읽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정조 임금은 노발대발했다. 정조는 이런 패관소품(稗官小品·짧고 자유로운 형식의 소설 같은 글)식 글쓰기가 성리학적 규범에 어긋나는 개탄할 만한 일이라 여겼다. 학문을 바르게 닦으면 세상의 모든 병폐도 바르게 고쳐진다는 게 정조의 생각이었다. 그러니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과 인의’가 아닌, 사소한 사물과 생각에 대해 분방한 문체로 적은 글을 두고만 볼 수 없었다. 적절한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남진, 나훈아의 시대에 느닷없이 노란 염색 머리의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가 등장한 형국이었다. ‘저게 노래(글이)냐.’ 분노한 정조는 중국에서 이른바 ‘잡서(雜書)’를 사오지 못하도록 했고, 이런 문장을 쓰는 유생에게는 과거 응시를 제한했으며, 이런 문체에 빠진 이들에게는 반성문을 받았다. 이것이 바로 ‘문체반정’이었다.

‘반정’이라 했지만 뭐 삼족이 몰살당할 역모를 꾀한 것도 아니고, 그저 문장으로 풍속을 어지럽힌 죄목 정도니 반성문만 써내면 다 용서해줬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박지원이 미적거리다가 반성문을 썼다. 쓰지 않고 버티고 싶었겠지만 어쩌랴. 그런데 그 반성문이 걸작이다. ‘너무 큰 죄를 지어서 반성한다고 될 것 같지 않다’는 투였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건지, 앞으로 계속 그리하겠다는 건지….

그런데 끝끝내 반성문을 쓰지 않고 버텼던 성균관 유생이 있었다. 그는 정조에게 속된 말로 ‘찍혀’ 몇 번이나 문체의 문제를 지적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조가 장원급제한 답안지를 읽고는 급제를 취소하고 꼴찌로 처리해버린 일도 있었다. 급기야 양반의 자제는 가지 않는 군대에 끌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들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평생 글을 썼을 뿐이다. 그가 바로 이 책이 다루는 매력적인 인물 이옥이다.

이옥은 위대한 사상을 전파하지도, 당대 최고의 문장을 써내지도 않았다. 책의 저자 말대로 18세기 시공간에서 그의 존재감의 휘도는 희미하다. 하지만 그는 평생 자유롭게 글을 썼다. 관운은 꽉 막히고 세심한 성격에 그저 글 쓰는 재주 하나. 그러면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뚝심까지 갖춘 외골수 아티스트. 세상이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앞장서서 개혁을 외치는 그런 부류도 아니다. 원하는 게 없으니 타인의 시선이나 평판에 휘둘릴 리 없고, 오로지 쓰고 읽으면서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다. 이쯤에서 이옥의 처지를 묘사한 저자의 탁월한 비유 한 대목. “볕도 안 드는 골방에서 싸구려 커피에 컵라면을 먹으면서도 열심히 곡을 만들어 부르는 인디밴드처럼, 아마도 이옥은 그렇게 별일 없이 살았을 것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옥을 중심에 놓고, 그를 통해 글쓰기의 의미를 들여다보고 있다. 저자는 먼저 이옥이 글에 담아낸 ‘의미’보다 그가 이런 글들을 지치지 않고 써냈다는 ‘행위’에 더 주목한다. 이옥의 글은 당시나 지금이나 주류 담론도, 대항 담론도 아니었다. 이옥은 세상의 질서나 도리 같은 성리학적 세계보다 한밤중에 통곡을 한 북방의 기녀, 도둑, 사기꾼, 위조지폐범, 비렁뱅이 음식평론가 등 이른바 ‘시정잡배’들의 이야기를 썼다. 상추쌈, 수숫대 속의 벌레, 나무와 꽃에 이르기까지 그의 관심사는 끝이 없었다. 글 속에서 그는 시장의 협잡꾼이 되었다가 난봉꾼의 아내가 되기도 했다.

주제도, 교훈도 없고 어찌 보면 특별한 사상적 깊이도 느껴지지 않는 이런 이옥의 글을 통해 저자는 주자학적 질서가 명의 몰락으로 한계를 드러내고 있던 시기, 조선 지식인 사이에서 꿈틀대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욕망과 함께 이옥의 글쓰기가 만들어내는 주변의 균열과 잡음, 그리고 이런 글쓰기가 필연적으로 드러내는 가치전복적인 저항의 정신을 읽어낸다. 특유의 감수성으로 자기시대 질병의 징후를 민감하게 읽어내면서 고통 받는 인간에게 공감했던 이옥. 이런 이옥에 대해 읽고 쓰는 이유를 저자는 ‘삶의 부침 속에서 보여준 기이한 용기,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일관된 어떤 태도가 보여주는 묘한 감동’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옥이란 인물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탄력 있는 문장과 폭 넓은 사유, 경쾌한 상상력 등으로 이옥을 읽어내는 저자의 솜씨도 보통은 훨씬 넘는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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