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금평 기자의 컬처홀릭>사모님의 이상한 외출… 드라마 뺨치는 현실

처음엔 드라마를 보는 줄 알았습니다. SBS 드라마 ‘돈의 화신’이나 KBS 드라마 ‘추적자’처럼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만능 권력의 단면을 비아냥거리며 해석하는 재미에 그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내용이 더해지면서 이는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닌 팩트라는 사실에 분통과 억울함이 쉴새없이 밀려들었습니다.

지난 5월 25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의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편은 어떤 막장이나 극적 드라마를 방불케 했습니다. 사건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화여대 법학과에 재학중이던 당시 22세의 하지혜 양이 이종사촌 판사 오빠의 실언 한마디에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게 ‘극적 드라마’의 시작이었습니다. 하 씨는 판사 오빠의 장모인 모 기업 회장 부인 윤모 씨에 의해 청부살해됐습니다. 사위의 불륜 대상을 잘못 짚었지만, 윤 씨는 끝까지 하 씨를 의심하며 2년간 따라다녔습니다.

학교와 집밖에 모르던 착한 딸이 새벽 등굣길에 낯선 남자에게 끌려가 얼굴과 머리 부위에 공기총 6발을 맞은 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있을까요? 눈도 채 감지 못한 딸의 써늘한 주검을 보면서,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눈을 감아라. 나머지는 아빠한테 맡기고.” 딸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아버지는 범인을 쫓기 시작했습니다. 베트남에서 캄보디아로, 그리고 다시 중국으로 돌며 결국 범인을 잡았고, 딸의 살해를 교사한 윤 씨까지 검거할 수 있었습니다.

사건은 이렇게 ‘정의의 승리’로 끝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무기징역으로 교도소에 수감돼야 할 사모님이 2007년부터 6년간 병원을 들락거리며 호화판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것이 알고싶다’팀은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12가지나 되는 윤 씨의 가식적 병명을 하나씩 따져가며 ‘형집행정지’의 사유가 될 수 있는지 캐물었고, 담당 주치의를 찾아다녔고, 사법 당국의 허술한 제도와 권력 남용을 지적했습니다.

취재진의 노력 끝에 검찰은 결국 형집행정지를 풀고 다시 사모님을 교도소로 불러들였습니다.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딸의 죽음과 그 죽음의 누명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칙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습니다. 검사와 의사의 양심을 저버린 행동, 가진 자들은 못 가진 자들과 다른 인격체라고 생각하는 인식의 모순이 대한민국의 오늘을 이끌고 있는 진짜 현실이라는 생각에 허탈감이 계속 밀려왔습니다.

‘추적자’에서 백홍석은 돈에 구속당한 법을 믿지 못해 총을 들고 법정에 들어서고, 현실에서 이대생들은 정당한 법집행을 위해 모금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드라마와 현실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정의가 실종된 사회를 구제할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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