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에 독배 내린건 ‘여론재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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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과 법, 정의의 다툼 / 켄들 코피 지음, 권오창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여론의 법정’이 있다. 가족들의 아침 식탁에서, 직장동료들의 대화에서 혹은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논쟁에서처럼 사람들은 늘 여론의 법정 위에 누군가를 세우곤 한다. 여론의 법정에서는 법정에서 적용되는 증거원칙이 통하지 않는다. 소송절차에 대한 규정도 없다. 담당하는 재판부가 하나뿐인 법률의 법정과 달리 한 사건에 대해 ‘복수의 배심원단’이 존재한다. 또 무죄추정(無罪推定)의 원칙이 지배하는 법정과 달리 여론의 법정에서는 유죄추정(有罪推定)의 원칙이 지배한다.

이 책 ‘여론과 법, 정의의 다툼’은 재판에서 여론의 비중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세태를 소개한다. 인터넷과 SNS로 대표되는 현대 미디어 사회에서 여론의 법정과 법률의 법정 사이의 소통과 갈등문제는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 현대 사회에서 여론의 법정은 배심원의 숫자가 크게 늘어났고, 판결의 속도도 비교가 어려울 정도로 빨라졌다. 이에 따라 두 개 법정 사이의 상호작용 양상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미국 연방검사를 역임하고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을 중심으로 여론의 영향력을 보여 준다. 소크라테스에게 독배를 들게 한 고대 그리스 재판과 프랑스의 국운을 살린 잔다르크에 대한 재판부터 도로 추격 장면을 헬기로 생중계한 미식축구 선수 OJ 심슨 부인 피살 사건, 재선거 결정을 뒤집은 미국 마이애미시 부재자투표 부정 사건 등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미친 재판의 이면을 다룬다. 책에 따르면 세기의 재판이라고 할 만큼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건에서 여론의 법정은 사건의 판결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여론은 소크라테스의 유죄 판결에 영향을 줬고, OJ 심슨을 살인죄에서 벗어나게 만들었으며, 앨버트 고어가 아니라 조지 부시가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도록 했다. 35세의 부인 니콜을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배심원의 무죄평결로 혐의를 벗은 심슨 사건은 여론 법정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다. 저자는 이 같은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며 올바른 정의 실현을 위해 법률 재판과 여론 재판 간 소통의 중요성을 제시한다. 변호사와 검사들이 재판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펼치는 ‘언론 플레이’는 법정 드라마를 보는 것만큼이나 흥미롭다.

저자는 “우리는 완벽한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며 “변호사와 소송 당사자들, 그리고 언론이 각자 무자비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최선의 방법은 헌법 가치를 존중하고, 이상과 현실을 동시에 잘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을 우리말로 옮긴 판사 출신 권오창 변호사는 한국 독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미국의 법제도는 물론 한국의 법률과 판례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풍부한 각주에 담아 책의 가치를 더했다. 권 변호사는 “이 책은 우리에게 하나뿐인 정의를 더욱 잘 추구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법정 사이에 건전한 긴장과 원활한 소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며 “법과 여론이 실제 사건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런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희구하는 정의는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체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도연 기자 kdychi@？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