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친고죄 폐지된 性범죄 유형과 처벌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10년 6월 서울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초등학생을 납치, 자신의 집으로 끌고 가 성폭행한 김수철이 현장검증을 하고있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6월 19일부터 성범죄자 처벌 및 사후관리 강화, 피해자 보호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6개 법률이 일제히 시행됐다. 60년 만에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조항이 폐지됐고 성범죄자는 피해자의 고소 및 합의 여부에 상관없이 무관용의 원칙이 적용되게 됐다. 구강·항문 성교 등 유사강간에 대한 처벌조항도 신설되고 강간죄의 대상을 부녀에서 사람으로 바꿔 성인 남성에 대한 강간죄도 성립되는 등 성범죄에 대한 처벌 조항에 큰 변화가 생겼다. 성(性)적인 목적으로 공중화장실이나 대중목욕탕에 들어가도 성범죄로 처벌될 수 있고,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은 소지만 해도 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신설되는 등 성범죄의 범위도 대폭 확대됐다. 이번에 시행된 법률은 ‘중곡동 주부 성폭행 살해 사건’ 등 지난해 잇따랐던 잔혹한 성범죄에 대한 대책 차원에서 국회에서 개정된 것이다. 개정 법률을 실사례를 통해 알아본다.

1. 추근거려도 처벌하나

강제적인 신체 접촉 여부 등 구체적인 행위에 따라 처벌 수위가 결정된다.

강제적인 신체 접촉 시도가 있었다면 ‘성폭력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법)상 강제추행죄가 적용된다. 이번 법 개정에 따라 강제추행죄도 친고죄 조항이 사라졌기 때문에 피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가족, 목격자 등이 고발해도 처벌이 가능해졌다. 전화 등 통신매체를 이용해 음란한 말을 했을 경우는 성폭법상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로 처벌이 가능하다.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얼굴을 대면하고 있는 상태에서 성희롱 발언을 했다면 형법상 모욕죄, 명예훼손죄가 적용되는 경우도 있다. 스토킹으로 간주되면 경범죄로 처벌받게 된다. 상대방이 명백하게 거절했는데도 세 번 이상 만남을 요구하면 스토킹이 되고 범칙금 8만 원이 부과될 수 있다.

2. 성인 남성 강간은

이번 법률 개정에 따라 강간죄 등의 객체(대상)가 ‘부녀’에서 ‘사람’으로 확대됐다. 남성도 강간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형법에 규정돼 있는 성인 대상 성범죄뿐 아니라 성폭법상 13세 미만자에 대한 강간죄 등의 객체도 ‘여자’에서 ‘사람’으로 확대했다.

현행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은 이미 남자 아동·청소년 대상 강간죄를 규정하고 있다.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선진국에서도 성범죄의 객체에 남자를 포함하고 있는 등 성범죄 대상을 여성을 의미하는 부녀가 아닌 남녀를 모두 포함하는 사람으로 확대하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고 할 수 있다.

3. 아동 성인물 소지땐

아청법상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의 범위를 아동·청소년이 직접 등장할 뿐 아니라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는 경우까지 포함시키고 음란물 소지의 개념을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임을 알면서 소지한 자’로 바꿨다.

개정된 법률에 따라 처벌 범위가 명확해졌다. 처벌 수위도 강화됐다. 단순 소지죄는 과거 벌금형만 있었지만 이번에 징역형도 가능해져 징역 1년 이하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수입·수출 행위는 기존 징역 5년 이상에서 무기 또는 5년 이상을 선고할 수 있도록 강력한 처벌조항을 만들었다.

4. 유사강간의 경우는

법률 개정을 통해 구강·항문 등을 이용한 성범죄를 별도로 규정했다. 과거에는 이 같은 범죄는 강제추행죄에 포함돼 있었다.

기존 강제추행죄가 징역 10년 이하 또는 벌금 1500만 원 이하를 선고할 수 있도록 한 반면 신설된 유사강간은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해 처벌조항도 강력하다. 성범죄가 과거보다 다양한 양상을 띠게 됨으로써 유사강간 조항이 신설된 것이다.

특히 유사강간은 아동·청소년·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자주 일어나는 범죄로 엄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유사강간의 경우에는 동성 사이에서도 성립이 가능한 범죄다. 남성이 남성을 상대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도 처벌 근거가 마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5. 부부·애인간 강간죄는

이번 법률 개정과 직접적인 상관은 없지만 최근 대법원은 부부간 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이혼 절차가 진행 중이지 않고 동거하고 있는 부부 사이에서도 강간이 성립할 수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5월 16일 아내를 흉기로 위협한 혐의로 기소된 강모(45) 씨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3년 6월을 선고했다.

부부 사이라도 강간죄를 적용받으면 무거운 징역형을 피하기 어렵다. 법률상 동거 의무가 없는 애인 사이에서 강제적인 성관계가 있을 경우 당연히 강간죄가 성립된다.

법원은 최근 부부, 애인 등 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난 성범죄에 대해서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강간뿐 아니라 강제추행 등에 대해서도 엄벌하고 있다.

6. 화장실·목욕탕 침범땐

건조물 침입죄만 적용됐던 공중화장실, 대중목욕탕 훔쳐 보기도 성범죄로 처벌된다. 기존에는 공공장소에 몰래 들어가 훔쳐 봐도 건조물 침입 혐의 외에는 처벌할 마땅한 규정이 없어 논란이 일었다.

이제는 체육시설·백화점 등 대규모 점포에 설치된 목욕실 또는 탈의실, 찜질방, 모유수유실 등에 침입해 몰래 엿보거나 몰래카메라로 촬영하는 행위도 성폭력 범죄로 처벌할 수 있게 됐다.

최근 육군 모 부대 소속 일병이 찜질방 여성 탈의실에 침입해 여장을 하고 알몸을 훔쳐 본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 같은 행위도 성범죄로 처벌이 가능하다.

지하철이나 학교 앞 등에서 벌어진 성추행 범죄도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았다면 처벌할 수 없었지만 형법상 모든 성범죄에 대해 피해자의 고소 없이도 처벌이 가능하게 됐다.

7. 친족간 강간 가중처벌 되나

동거하는 가족, 친척 간에 성범죄가 다수 발생하는 것을 고려해 가중처벌되는 친족 범위를 확대했다.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등’은 일반 성폭력 범죄보다 가중처벌하는데 기존 친족의 범위는 4촌 이내의 혈족·인척까지였다.

개정안에는 ‘동거하는 친족’도 가중처벌 대상에 포함시켰다. 예를 들어 함께 거주하는 5촌 당숙에 의한 강간의 경우, 단순 강간죄가 아닌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으로 가중처벌할 수 있게 됐다.

형량은 단순 강간죄(3년 이상 징역)가 아닌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7년 이상 징역)으로 늘어난다.

친족관계인 사람에 의한 성폭력 범죄는 지난 2008년 293건에서 2012년 469건으로 4년간 6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동거가 친족 범위에 포함되면서 가중처벌 대상자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8. 음주·약물로 인한 성범죄는

술을 마시고 성범죄를 범한 경우 기존에는 이를 감안해 형이 집행되기도 했지만 앞으로는 음주, 약물로 인한 성폭력 범죄는 감경사유에서 대부분 배제된다.

2008년 발생했던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 사건에서 조 씨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취 감경을 인정받아 검찰이 무기징역을 구형했음에도 법원에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검찰 단계에서 음주·약물로 인한 심신 장애를 인정해 형량을 줄여주는 규정을 없애기로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적용 범위를 13세 미만 대상 강간·강제추행 등에서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로 확대해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폭력 범죄만큼은 음주라는 사유로 형이 감경되는 것을 배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9. 공소시효 미적용 대상은

13세 미만 아동·청소년 및 장애인 대상 강제추행죄, 준강제추행죄에 대해서 공소시효 적용을 폐지했다. 강간살인죄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연령,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해 범죄 발생 시기와 관련 없이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아동 성범죄 피해자의 경우 범죄 신고가 제때 안 돼 뒤늦게 수사가 이뤄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공소시효를 넘기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지난해 7월 발생한 ‘통영 초등학생 성폭력 사건’과 같은 해 8월 ‘나주 초등학생 성폭력 사건’ 등을 계기로 아동 상대 성범죄에 대한 강력 대처 필요성이 대두됐다.

의사 표현이 어려운 13세 미만 아동·장애인 피해자에 대해 수사·재판 과정에서 의사소통을 도와주는 진술조력인 제도를 도입해 2차 피해를 방지하도록 했다.

10. 성범죄자 정보 공개는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확인하기 쉽도록 개선했다. 읍·면·동까지만 공개하던 성범죄자의 주소를 도로명과 건물번호까지 상세화하고, 우편 고지 이외 읍·면·동 게시판에 게시하도록 했다.

기존 성범죄자들이 사진을 임의로 제출해 식별이 어려웠지만 앞으로는 식별이 가능하도록 접수기관이 600만 화소 이상 고해상도로 직접 촬영해 공개하도록 했다.

성범죄자 사후 관리 및 재범 방지도 강화돼 과거에는 피해자의 연령에 따라 관리 기관이 달라 혼선이 있었지만 이제는 연령에 상관없이 성범죄자 등록·관리는 법무부, 공개·고지는 여성가족부로 각각 일원화했다.

미성년자는 성범죄자에 대한 신상정보를 열람할 수 없었지만 실명인증만으로 열람이 가능하도록 개선했다.

신상정보 관리기간은 10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났고 범죄자의 정보 제출기한을 법원 선고 후 30일 이내로 기존(60일)보다 절반으로 줄여 공백기간을 최소화했다.

김병채·김동하 기자 haass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