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바나 “日선 현대사 안가르쳐… 침략史 인식 부재”

  • 문화일보
  • 입력 2013-07-05 14:42
프린트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어령(왼쪽) 초대 문화부 장관과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4일 오후 도쿄국제도서전에서 ‘디지털 시대, 왜 책인가?’를 주제로 대담하고 있다.


‘책으로 읽는 한·일의 마음’이라는 도쿄국제도서전 한국관 주제에 걸맞게한국과 일본의 대표지성들이 다양한 주제로 대담을 벌였다. ‘2013 도쿄국제도서전’이 열리고 있는 도쿄 빅사이트 전시장 국제회의동에서 4일 오후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과 일본의 대표적 지식인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가 만났다. 두 사람은 ‘디지털 시대, 왜 책인가?’를 화두로 책의 위기와 책에 내포된 사회·문화적 의미 등을 짚어나갔다. 다치바나는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도쿄대생들은 왜 바보가 되었는가’등의 저서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지성인이다.

다치바나는 이달 말 상영예정인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신작 애니메이션의 팸플릿에 실리는 2400자 분량의 글을 쓰기 위해 ‘산더미 같은’ 책을 쌓아놓고 읽었다고 말할 정도의 독서광이다. 그는 일본 젊은 층의 역사의식 빈곤 문제에 대해 “나 자신이 고등학교 때 근현대사 부분은 거의 제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배우지 못했다”며 “왜 (현대사 교육을) 피하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그 결과 지금의 상태가 됐다”고 지적했다.

“일본 학교에서 역사 교육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지만 주로 조몬 신석기 시대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역사일수록 자세히 가르치지요. 나도 고등학교 마지막 학기에서 메이지(明治)유신 때까지만 배웠어요. 왜 최근 역사(현대사)를 가르치지 않느냐면 대학 입시에서 역사해석 부분의 논쟁적인 것은 시험문제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해 출제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한국의 대표적 창조적 지성인으로 꼽히는 이 전 장관은 “책은 기억의 저장물이며 책의 집필자들이 한 시대의 집단기억을 만든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독일의 사례를 소개했다.

“독일의 경우 여러 집단이 책을 만들어 히틀러를 긍정하는 것을 보고 젊은이들이 이쪽으로 가면 큰일 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80년에 홀로코스트 영화와 책을 만들어 기억을 새롭게 만들어줬어요. 그들이 나치에 대한 집단기억을 새롭게 환기시켜 프랑스와 역사 화해를 이룬 것처럼 한국과 일본도 집단기억을 공유할 때 미래 세대가 과거의 역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두 지성 모두 디지털이 책과 지식의 세계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치바나는 록펠러 재단의 기부로 도쿄대가 커다란 도서관을 조성하는 등 대개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도쿄대는 새로 짓고 있는 도서관 앞부분 넓은 정원에 매우 깊게 땅을 파고 있는데 지하 8층까지 건립할 수 있는 전 자동화 서고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이게 만들어지면 300만 권 정도의 책을 소장할 수 있는데, 책을 신청하면 어떤 책이든 몇 분 내에 기계가 책을 실어다주는 시스템이 구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치바나는 “향후 도서관에서 취급하게 될 책의 절반은 디지털서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전 장관은 공식 대담에 앞서 다치바나와 만나 “한·중·일 지식인들이 모여 한·중·일 공통의 한자 800자를 추출해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얘기했다.

이에 대해 다치바나는 “빠른 속도로 디지털 시대가 진행되고 있다. 한자를 외우지 않아도 소리를 입력하면 한자로 전환되는 소프트웨어가 있으면 한자를 다 읽어낼 수 있다”며 800자의 공통한자를 만드는 한·중·일의 움직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서양 알파벳이 26자인데 한·중·일 공통의 800자 한자가 만들어지면 800개의 문자를 자유자재로 사용해 문화를 꽃피울 수 있게 된다”면서 “아시아 문명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장관은 한·중·일간 소통 문제와 관련, ‘공부(工夫)’의 뜻을 비교했다. 그는 “똑같은 한자를 쓰지만 중국에서 공부는 여유시간이 있다는 의미이고, 한국에서는 영어의 ‘스터디(study)’, 일본에서는 아이디어를 말한다”며 “희랍어에는 쉬면서 생각하는 것을 뜻하는 스콜(skole) 하나만 있는데, 한·중·일의 뜻을 합치면 ‘틈을 내 공부하고 마지막으로 생각이 나온다’는 것”이라고 흥미롭게 풀었다.

그는 몸과 마음, 영혼 등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디지털 책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나에게 이 세상에 딱 하나의 책이 있다면 기억할 수 없는 책입니다. 끝없이 속삭이고 책을 읽게 만드는 모태 속 자궁 속에서 읽었을 생명의 근원적인 책이 있었을 것입니다. 종이책을 그대로 사이버 공간에 옮기면 전자책이 된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어린 시절 책을 읽어주셨던 어머니처럼 시각과 청각으로 느낄 수 있는 디지털 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다치바나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고 책에 싫증을 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책은 계속 나올 것”이라면서 “책을 재생산하는 과정은 한 국가의 문명을 유지하게 해 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알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며, 인간의 뇌 형태가 그렇게 돼 있으므로 책을 통한 지적 세계는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인간의 뇌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책의 세계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 = 글·사진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
주요뉴스
기사댓글
AD
count
AD
AD
AD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