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위선 꼬집은 괴짜논객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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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티노 평전 / 곽차섭 지음 / 길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풍자문학가 피에트로 아레티노(1492∼1556)는 르네상스를 다룬 책에 자주 등장하지만 그에 대한 평가는 매우 야박하다. 돈을 위해 음란서를 쓰고 귀족과 명사에게 협박 편지를 보낸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통속 작가라는 평이다.

르네상스 지성사와 미술사에 관심이 깊은 곽차섭 부산대 사학과 교수는 2005년 아레티노의 ‘6일간의 대화’을 읽고 특별한 감흥을 느꼈다. ‘여성의 직업을 수녀, 아내, 창녀로 나눈 뒤 창녀가 가장 덜 위선적’이라며 당대 허위의식을 폭로했던 그에게서 엘리트적이던 르네상스 문화 진영 내 발생한 흥미로운 균열을 봤기 때문이다. 그 뒤 저자는 아레티노를 추적했고 10년 가까운 연구 끝에 그의 평전을 내놨다.

저자는 아레티노를 16세기 르네상스의 주목할 만한 문화 현상으로 규정했다. 비천한 가문에서 태어나 문벌도, 학벌도 없이 당대 베스트셀러 작가 자리에 올라 엘리트 계급의 위선을 공격하고 상하층 문화의 가교 역할을 한 문화 아이콘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틀 속에서 저자는 1492년 피렌체 부근 소도시 아레초에서 태어나 64세에 세상을 떠난 그의 삶을 정리했다.

10세에 집을 떠난 그는 로마 부호의 사환으로 들어가 입신의 발판을 마련한 뒤 교황 레오 10세의 코끼리가 죽자 이를 탐욕스러운 추기경에 빗댄 기발한 글로 그의 총애를 얻게 된다. 이 같은 아레티노의 삶은 1524년 최대 전환기를 맞는다. 그해 라파엘로의 제자 줄리오 로마노가 16가지 성교 장면을 그리고, 마르칸토니오 라이몬디가 판각한 작품 ‘체위’가 나오자 교황은 진노하고, 결국 판화가는 잡혀 들어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지켜본 아레티노는 “어리석은 편견과 내숭 떨기가 싫다. 사람들은 그런 것 때문에 정말 즐겁게 볼 만한 것들을 바라볼 수 없다”며 이 ‘체위’ 16장면에 각각 자신의 소네트를 붙여 책을 내놨다. 교회의 검열과 압수에도 불구하고 이는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누렸다. 그 뒤 그는 베네치아로 옮겨 30여 년간 숱한 베스트셀러를 내놓았다. 당시 인쇄술의 발달이 그의 인기의 기술적 기폭제가 됐다.

하지만 그가 통속 작품만 썼던 것은 아니다. 예수와 성인의 전기도 내놨고, 지식인과 귀족의 위선을 조롱한 사회 풍자 희극과 함께 고전적 장엄미를 갖춘 비극도 썼다. 이 같은 아레티노에 대해 저자는 “정교하면서도 즉흥적이고, 세련되면서도 통속적이며, 미덕과 악덕의 가면을 동시에 쓴 괴짜”라며 그에게서 ‘마키아벨리’를 떠올렸다. 마키아벨리가 정치를 도덕적 기준이 아니라 현실적 기준으로 봤다면 아레티노는 성과 섹슈얼리티에서 동일한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아레티노의 괴짜 같은 독특성이야말로 르네상스 문화의 다양한 개성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