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 윤리’ 묵자, 너무 일찍 근대를 설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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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 임건순 지음 / 시대의 창

묵자(墨子)는 놀라운 말을 많이 남긴 사람이다. 그는 궁실, 음식과 옷, 장례 의식과 배와 수레 등 다방면에서 귀족과 지배층의 사치를 비판했다.

묵자는 배나 수레 등을 생존에 필요한 정도로만 소비하라고 주장했다. 묵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부를 늘리는 것은 밖에서 땅을 빼앗아 늘리는 것이 아니다. 그 나라 사정에 따라 쓸데없는 소비를 없애 두 배로 늘리는 것이다.” 책은 보편 복지(겸애), 침략전쟁 반대(非功: 공격하지 않는다는 뜻), 의로운 정치를 주장한 묵자의 정수를 쉽게 풀어쓴 교양서다.

‘묵자’ 원문의 중요한 대목들을 쉬운 번역문으로 술술 읽어나가면서 묵자는 어떤 사람인지, 묵가(墨家)는 어떤 집단인지, 그들이 등장한 역사적 배경과 맥락, 후대의 분열과 변질, 중국 사상사에서 차지하는 의미, 그리고 오늘날의 현실까지 깜짝 놀랄 만큼 갈파하는 묵자의 가르침을 설명한다. 한비자는 “오늘날 이름 높은 학파는 유가와 묵가”라고 말했다.

묵가는 유가와 함께 양대 현학으로 꼽힐 만큼 넓은 지지를 받았다. 묵자의 무리는 천한 계층인 공인 출신 지식인으로 추측되며,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학파인 묵가도 공인, 장인, 무사 등으로 이뤄졌다. 묵가는 결속력이 매우 강했다. 저자는 “묵가는 강대국의 침략을 당할 위기에 놓인 약소국을 위해 성곽을 방어하고, 방어를 위한 각종 무기와 설비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며 “책과 문헌을 정리하는 설서(說書), 군사기술을 익힌 종사(從事), 사상 전파를 위해 논증과 언변을 닦는 담변(談辯) 등 3가지 전공별로 전문가를 키웠으며, 역사상 보기 드문 체계적 결사체였다”고 말한다.

묵자는 전국시대 주요 국가들의 잘못된 인사 행정도 신랄하게 비난한다. 묵자는 “비유하자면 벙어리를 사신으로 기용하고, 귀머거리를 악사로 삼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혈연과 신분의 폐쇄적 울타리에 갇혀 정치가 어지러우니 울타리를 허물어 현명한 이들을 등용하자는 묵자의 얘기는 당시로서는 관철되기 어려운 일이었다. 현명한 사람을 유치하기 위해 인센티브까지 줘야 한다는 묵자의 생각은 선진적인 것이다. 묵자는 ‘비악’ 편에서는 지배층의 음악 소비를 비판한다. 관혼상제 의식에 음악이 연주됐고, 그러한 의식과 문화를 배워 전수하는 유가집단에 음악은 너무도 중요한 것이었다.

일본의 동양철학자인 와타나베 다카시(渡邊卓)는 “묵가는 너무 일찍 근대를 지향했으며 그 때문에 절멸했고, 역시 그 때문에 오늘의 우리에게 다시금 상기되는 사상 집단”이라고 말했다. 가족 윤리를 우선시하고 군주의 덕목을 중시했던 당대의 다른 학파와 달리 혈연 공동체의 울타리를 넘어선 보편적 윤리와 합리적 사회 질서를 주창했던 묵가는 동양철학의 역사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