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명보 리더십과 品格

김종호/논설위원

이름만 들어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면서 활력과 희망을 솟구치게 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짜증과 분노만 불러일으켜 다시는 꼴도 보기 싫은 사람도 있다. 전자(前者)의 대표적인 예로, ‘홍 카리스마’로도 불리는 홍명보(44)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떠올리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적어도 현재까진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지난 6월 25일 취임 후 처음으로 경기 파주의 국가대표팀 트레이닝센터(NFC)에 소집한 태극전사들에게 그가 한 말의 첫마디도 이를 입증한다. “여러분은 국가대표다. 그에 걸맞은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껴라.”

태극전사들에게 NFC에 소집돼 들어올 때는 양복 정장(正裝) 차림으로, 오전 10시부터 정오 사이에, 정문에서부터 훈련 숙소까지 걸어오라고 미리 통보했던 그는 모든 선수와 코치들보다 먼저 오전 10시 2분에 말끔하고 산뜻한 정장 차림으로 걸어서 들어갔다. 국가대표는 품격과 규칙을 앞장서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감독부터 실천해 보인 것이다. 그 효과는 그날 바로 나타났다. 홍 감독이 천명한 ‘하나의 팀(One Team), 하나의 정신(One Spirit), 하나의 목표(One Goal)’에 부응한 선수 전원이 정문에서 숙소까지 300m 정도를 걸어가는 짧은 시간에도 가다듬었다는 자세와 각오부터 그렇다.

골키퍼(GK) 정성룡은 “정장을 입고 걸어 들어오는데 레드 카펫 위를 걷는 듯했다”면서 자긍심과 책임감을 각별히 느꼈다고 했고, 공격수(FW) 김동섭은 “옛 양복이 이제 맞지 않는 것 같아 사흘 전에 백화점에 가서 새 옷을 샀다”며 “새 옷을 고를 때부터 각오가 달라졌다”고 했다. 미드필더(MF) 고무열과 이명주는 “겨울 양복밖에 없어서 두꺼워도 입고 왔다”며 더운 옷을 입고 나온 첫걸음부터 예전과 달라졌다고 했다. 이날 주장으로 임명된 하대성과 수비수(DF) 김영권·홍정호·이용 등도 “헐렁한 티셔츠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오던 때와 달리 책임감이 강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선수 시절엔 ‘영원한 리베로’나 ‘흥부’로 일컬어진 홍 감독이 강력한 카리스마와 함께 소통 역량까지 갖춘 탁월한 리더십과 품격(品格)을 보인다고 해서 많은 사람의 찬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각 분야에서 지도자 행세를 하면서 천박하고 야비하기까지 한 언행을 일삼는 사람들을 더 부끄럽게 할 만하다. “재산이 29만 원밖에 없다”며 추징금 중 1672억 원의 납부를 피해오다가 법원의 압수 수색 영장 발부에 따른 검찰의 압수·압류가 집행됐을 뿐 아니라 자녀들은 물론, 친·인척과 측근 등 20여 명의 출국금지 조치까지 자초한 전두환 전 대통령만 그런 게 아니다. 7년 동안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조차 떠올리고 싶지 않아하는 국민이 다수인 그는 제쳐 두고도 수두룩하다.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민주당 상임고문만 해도 그렇다. 노 정부의 실정(失政)으로 한때는 폐족(廢族)을 자처하던 친노(親盧) 진영의 좌장 격이라는 그는 지난 14일 박근혜 대통령을 공공연하게 ‘당신’으로 지칭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박정희가 누구이고, 누구한테 죽었나. (1979년 10월 26일 박 대통령을 저격한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누구인가. 박씨 집안은 (국가정보원 전신인) 안기부·중앙정보부와 그렇게 인연이 질긴가.” 질문 형식을 빌려 그는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이 앞서 “박정희 대통령=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존재인 귀태(鬼胎)” “박근혜=귀태의 후손” 운운했던 막말에 사실상 맞장구를 친 것이다. 오죽하면 조경태 민주당 최고위원까지도 이런 행태를 두고 “당 상임고문이란 분이 당에 도움을 주진 못할망정 쪽박을 깨뜨리는 일을 해서야 되겠느냐”며 “요즘 막말 플레이들을 보면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개탄했을 것인가.

품격을 들먹이기조차 민망한 전·현직 지도자는 이 밖에도 널려 있다. 이들의 천박한 막가파 식 언행이 개인과 소속 집단의 격뿐 아니라 국격(國格)까지 깎아내리는 것이 현실이어서, 홍 감독의 리더십과 품격은 그가 의도하진 않았어도 축구 영역을 넘어 사회 전반과 국가 차원에서까지 일부 지도자들의 대오각성(大悟覺醒)을 간접적이지만 강력하게 촉구하는 것으로도 비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