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나치 문양과 욱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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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13-08-0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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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주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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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주엽 / 체육부장

그리스의 19세 이하 축구대표팀의 주장이었던 기오르고스 카티디스는 단 한 번의 실수로 축구인생을 접을 처지에 놓였다. 그리스 프로리그 AEK아테네의 미드필더였던 카티디스는 지난 3월 한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관중석에 나치식 경례를 하는 세리머니를 했다. 열아홉 살 어린 선수의 ‘치기’에서 나온 행동이었지만 대가는 혹독했다. 손꼽히는 유망주였던 그는 영원히 그리스 대표팀에서 추방됐다. 소속팀에서도 쫓겨나 이탈리아 2부 리그로 옮겼지만 ‘나치식 경례’는 꼬리표처럼 따라붙어 그는 사실상 선수 생명이 끝난 것으로 간주된다.

유럽에서 나치를 흉내 내거나 그것을 상징하는 문양인 하켄크로이츠를 내건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특히 하켄크로이츠는 곧 홀로코스트와 연결돼 유럽인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일 만큼 금기의 대상이다. ‘전범국’인 독일의 뼈를 깎는 반성과 피해자인 유럽 각국의 철저한 역사인식과 처벌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자리 잡았다. 서구인들의 잠재의식에 그 상징성이 뿌리내린 것이다.

나치가 하켄크로이츠를 앞세우고 인류사에 남을 만행을 저질렀다면 일본 제국주의는 소위 ‘욱일기’를 내걸고 나치에 못지않은 참극을 벌였다. ‘전범기’(戰犯旗)다.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 일본 체조선수들이 이 전범기의 문양을 본뜬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치렀다. 독일 선수들이 하켄크로이츠를 가슴에 새긴 유니폼을 입고 등장한 거나 진배없다. 독일이 그랬다면 올림픽에서 퇴출됐을 것이다. 몇 년 전 유럽축구에선 한 응원단원이 팔에 하켄크로이츠 문신을 한 것조차 카메라에 잡히면서 구단이 벌금을 물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 동아시안컵 축구대회 응원에서처럼 일제의 전범기는 여전히 망령처럼 등장하고 있다. 나치와 일제의 만행은 무게가 다른 건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각국이 독일에 했듯이, 일본에 대해 전범국에 합당한 처벌을 못한 게 원인일 것이다. 문제는 세계인들에게 일제의 전범기가 하켄크로이츠처럼 인식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하다못해 우리와 같은 피해 당사국인 중국이나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 일본이 전범기를 여전히 해상자위대의 깃발로 사용하고, 각종 문양과 경기장의 응원도구로 등장시키지만 한국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시아 국가는 없다.

이번에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의 개헌 망발과 철회 과정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아소가 ‘나치식’의 개헌을 들먹이지 않았다면 과연 세계 각국이 이번처럼 즉각 반발해 발언 철회까지 끌어낼 수 있었겠냐는 것이다. ‘개헌’보다는 ‘나치식’이라는 발언에 서구를 비롯해 세계 각국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일본이 전범기를 계속해 꺼내 드는 작태를 막기 위해서는 ‘욱일기=하켄크로이츠’라는 상징성을 세계인들에게 심어주는 캠페인이 필요하다. 이런 운동이 미국 교포사회에서 없지는 않았지만 영향은 미미했다.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연대가 관건으로 보인다. 정부가 나서기보다는 정치권이나 시민단체들이 연대의 고리를 만들어 캠페인을 시작할 수 있다. 연대를 통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나 국제축구연맹(FIFA) 등에도 지속적인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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