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할 타자 실종 미스터리’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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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천 프로젝트 / 정재승 외 지음 / 사이언스북스

야구책인가? 아니다. ‘프로젝트’라니, 무슨 연구서적? 그것도 아니다. 책의 부제는 ‘4할 타자 미스터리에 집단 지성이 도전하다’. 미스터리와 집단 지성이라, 퀴즈나 수수께끼 풀이책? 더더욱 아니다. 이쯤에서 말씀드리자면, 야구에 관한 연구서적이긴 한데 꼭 그렇다고만 할 수도 없는 성격의 책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그도 그럴 것이 진화생물학과 통계학을 바탕으로, 집단적인 공동연구 과정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와 양준혁·김태균·김현수·정근우·홍성흔 등 쟁쟁한 야구선수들의 인터뷰까지 들어 있다.

표지만 보고 선뜻 책을 잡은 이는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헷갈릴 것이다. 물론 그에 비례해 깊은 나락에 떨어지듯 점점 책에 빨려들어가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릴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미리 짐작하기도 어렵거니와 책장을 넘길수록 흡인력을 발휘한다.

한마디로 이 책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백인천이 달성한 이후 다시 나오지 않는 ‘4할 타자’에 대해 그 원인을 ‘과학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여기에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를 비롯해 이민호·천관율·윤신영 외 백인천 프로젝트팀 54명이 합세해 집단적인 연구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시작은 이랬다. 2011년 12월 18일 정 교수가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4할 타자는 왜 사라졌을까요? 투수 기량이 급속도로 발전해서? 규정이 투수에게 유리해서? 스티븐 제이 굴드는 저서 ‘풀하우스’에서 선수 기량 안정화로 너무 잘하는 선수도, 너무 못하는 선수도 사라지게 된 분산의 감소가설 제시. 우리 확인해 봐요!”

이 트위트에 반응한 이는 무려 100명이 넘었다. 이들은 온라인 네트워크에서 나와 오프라인으로 모였고,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4할대 타율을 기록한 백인천의 이름을 딴 ‘백인천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연구주제는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내놓은 4할 타자 실종에 대한 가설을 한국 프로야구에서 검증한다는 것. 굴드는 자신의 저서 ‘풀하우스: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는 타자의 나태함이나 경기 환경 탓이 아니라 미국 프로야구라는 ‘시스템의 진화적 안정’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자연의 많은 시스템이 성숙할수록 개체 간 특성의 ‘분산’이 평균을 중심으로 줄어들 듯 야구선수들의 기량도 점점 평준화돼 평균 타율을 중심으로 타율이 지나치게 높은 선수도, 지나치게 낮은 선수도 점점 사라지는 게 보편적인 특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시스템이 안정되면) 선수 사이의 격차가 줄어들어 1할 타자도 사라지지만 4할 타자도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백인천 프로젝트팀은 이를 바탕으로 한국 프로야구 30년의 데이터를 비교·정리·분석함으로써 ‘굴드 가설’이 한국 프로야구의 4할 타자 실종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 과정에 대한 세밀한 보고서와 결과물을 이 책은 담고 있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