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우려먹던 인류, 문명 위기 자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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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노예, 그 반란의 시작 / 앤드류 니키포룩, 김지현 옮김 / 황소자리

“석유로 인해 인류문명은 다시 한 번 자만심의 희생양이 됐다. 과거 노예라는 에너지에 의존했던 우리는 이제 석유와 그 주인들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를 구해줄 제우스가 없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고대로부터 내려온 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에너지 사용을 정의롭고 도덕적이며 인간적 척도에 부합되게, 즉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변환해야 할 책임은 이제 온전히 우리에게 있다.”

책의 성격과 메시지를 응축한 저자의 말이다. 책에 따르면 기원전 200년 로마는 60만 명에 달하는 노예를 거느렸다. 그로부터 2세기 뒤 노예의 수는 수백만으로 불어났고, 시간이 더 지난 후에는 전쟁이나 교역을 통해 포획한 노예가 로마 인구의 3분의 1에 육박하기까지 했다.

고대 문명은 쇠사슬을 채운 인간의 근력에 의존해 작물을 키우고 도시를 건설하고 황제가 입을 옷을 마련했던 것이다. 로마제국 멸망과 함께 수그러들었던 이 제도는 근대 패권주의 문명과 함께 다시 고개를 들었다. 19세기 초엽, 노예무역은 지구상에서 가장 수익이 많이 나는 사업 중 하나였던 것. 하지만 장구한 세월 동안 명맥을 유지하며 인간사회의 동력 역할을 했던 노예제도는 1850년 마침내 폐지됐다. 노예를 부리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진한 인간애가 생겨서였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바로 이때부터 석탄과 석유로 가동되는 수백억 무생물 노예가 등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40년 미래학자 벅민스터 풀러에 의해 명명된 ‘에너지 노예’들은 이전의 인간 노예보다 훨씬 뛰어난 일꾼들이다. 수많은 가전제품, 자동차, 스마트폰 등 이들 ‘에너지 노예’들은 연료만 공급하면 주인들에게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자기 일을 충실히 하고 있다.

책의 제목 ‘에너지 노예, 그 반란의 시작’이 시사하듯 저자는 수많은 ‘에너지 노예’에 의해 굴러가는 위기의 현대사회를 파헤친다. 화석연료 발견으로부터 화려하게 꽃피운 기계문명과 그것이 인류 정신 및 사고체계를 왜곡시킨 과정, 그리고 끝없는 성장신화에 갇혀버린 현대 사회의 위태로운 풍경을 정치·경제·문화·윤리적 측면에서 다양하게 조망한다.

화석연료를 에너지 노예로 삼아 봉착한 현대사회의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는 일본이다. 저자에 따르면 2011년 일본 센다이(仙台) 대지진 직후 언론은 위험천만한 원자력발전소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지만, 정작 이 재앙으로 민얼굴을 드러낸 것은 석유를 연료 삼아 정점에 달했다가 이내 그 뒷심을 잃어버린 경제구조의 취약성이었다.

역사학자 JR 맥닐에 따르면 20세기는 1900년 이전 1000년 동안 사용한 에너지의 10배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심엔 석유가 자리 잡고 있다. 그 누구도 석유와 석유 개척자들의 기세를 막을 수 없었다. 연료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발전소가 곳곳에 세워지고 철도망에 이어 쭉쭉 뻗은 고속도로가 세상의 풍경을 바꿔놓았다.

저자는 현대인들의 석유 등 화석연료에 대한 인식에 대해 날카롭게 꼬집는다. “지금 우리 대다수는 화석연료 사용이 도덕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17세기 영국 상인들도 대서양 노예무역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다. 로마인들이 인간 노예를 바라보는 방식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저자가 든 메스엔 카를 마르크스도 비켜나지 못한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를 맹비난하면서도 정작 자본의 물적 토대였던 에너지 노예라는 요소는 주목하지 못한 채 눈앞의 잉여에만 쌍심지를 켰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듯 에너지 문제에 대해 둔감한 세상의 시선에 반기를 들고, 더 늦기 전에 지속가능한 세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새롭고 혁명적인 ‘에너지 노예 해방운동’을 제안한다. 저자는 “모든 에너지 문제는 도덕의 문제다”며 “올바른 생활방식을 고민하는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바로 석유를 비롯해 기업들이 제공하는 모든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에너지로 행복을 추구하는 사이, 우리는 행복을 잃고 말았다”고 말한다.

낭비 중독에 빠져버린 이제까지의 생활방식과 과감히 단절하고 과잉의 위험성을 예민하게 감지하던 본래의 윤리적 더듬이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