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肉으로 연명’ 참극 부른 탐욕·무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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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 대기근 / 멍레이·관궈펑·궈샤오양 엮음, 고상희 옮김 / 글항아리

“피난민들은 손톱을 씹고서야 자신이 먹은 것이 인육으로 만든 만두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누구도 상관하는 이가 없었다. (…) 서쪽으로 가는 기차가 퉁관 역으로 들어오는데, 그 양옆에 ‘인육 덩어리’를 가득 매달고 있었다. 바람에 말라서 베이컨처럼 납작해진 것도 있었다. (…) 어느 부부는 친딸을 먹었다. 아내는 남편에게 잡아먹힐 것이 무서워 어두운 밤을 틈타 도망치다가 길에서 굶어 죽었다.”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수백, 수천 년 전의 이야기도 아니다. 불과 71년 전 중국 허난(河南)성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참극이다. 중국의 지역신문 ‘허난상보(河南商報)’가 특별취재팀을 꾸려 1942년 허난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추적, 보도한 것을 모은 책이다. 공식적인 역사에서 이 시기는 공백으로 비어 있었다. ‘허난상보’의 기자들은 당시 지식인들이 간헐적으로 남겨 놓은 기록과 지방지 등에 몇 줄로 남아 있는 사실들을 근거로 진상을 파고들어 가기 시작했다. 참극의 과정은 이랬다.

1938년 일본군이 쳐들어오자 장제스(蔣介石)는 일본군의 진격을 지연시키기 위해 정저우(鄭州) 근방 황허(黃河)의 둑인 ‘화위안커우(花園口) 제방’을 폭파한다. 이 조치로 89만 명이 사망하고 1250만여 명이 피해를 보았다. 당시 국민당 정부는 허난 지역 주민에게 제방 폭파는 일본군이 한 짓이라고 선전했다. 화위안커우 제방 폭파 사건은 1942년의 대기근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허난성의 농지 면적이 급속히 줄어든 것이다. 1936년에 5만2000㎢였던 식량 재배 면적이 1942년엔 1만8600㎢로 줄어들었고, 생산량도 급격히 감소했다. 농지와 수로는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버려지고 우물을 파는 이도 없었으며 가축도 거의 사라졌다.

그 이후 시작된 지독한 가뭄은 1942년의 대기근으로 이어졌다. 엄청난 규모의 메뚜기 떼 습격, 자식을 팔아넘기는 부모, 피난의 행렬, 탐욕스럽고 부패한 정부와 이에 맞선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기자들은 대기근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얻어낸 일화를 바탕으로 현장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대조함으로써 사라진 역사를 복원했다.

책은, 무려 300만 명이 죽은 대기아가 결코 자연의 탓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무책임에서 비롯된 인재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저자들은 “우리가 역사를 잊는다면, 또 다른 대기근이 우리를 덮칠 것”이라고 결론내린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