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연극 ‘호랑이를 부탁해!’에서 윤원호(김희연 분·맨 왼쪽)와 김현(권동호 분·왼쪽에서 두번째)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간신히 이어간다. 창작집단 LAS 제공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안녕, 피아노’
눈에 띄는 창작극 두 편이 서울 대학로에서 관객들의 호응을 받으며 공연되고 있다.
지난 20일부터 9월 8일까지 노을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안녕, 피아노’와 9월 1일까지 키 작은 소나무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호랑이를 부탁해!’다. 극단 노을의 제30회 정기공연인 ‘안녕, 피아노’가 이번에 첫 무대에 오른 창작 초연인 데 비해 창작집단 LAS의 ‘호랑이를 부탁해!’는 지난 2011년 6월 초연 이후 관객들의 재공연 요청이 잇따르자 이번에 앙코르 공연으로 무대에 오른 것. 그만큼 작품성과 흥행성이 검증됐다는 얘기다.
우선, 최명숙 작·연출의 ‘안녕, 피아노’는 흔들리는 인생들을 위한 연극이다.
극의 주인공은 피아노를 전공하고 사회에 막 나온 미정. 상류층으로 살다 갑자기 몰락한 미정의 가족은 전 재산을 처분하고, 중소도시의 작은 모텔을 관리하는 일로 간신히 살아간다.
미정의 간곡한 부탁으로 유일하게 남겨진 피아노가 모텔 방에 놓이게 되자 미정의 아버지는 모텔 이름을 피아노라고 붙인다. 한데, 아버지는 다른 모텔과 달리 반드시 자고 갈 손님만 받겠다는 비현실적인 원칙을 정한다. 게다가 손님들에게 피아노가 있는 최고급 모텔이라느니, 딸이 피아노를 전공했다느니 하는 쓸데없는 자랑을 늘어놓는다.
미정의 어머니 역시 무너진 자존심을 감당하지 못해 모텔 앞마당에 꽃밭을 가꾸며 현실을 외면한다.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물건 찍어내듯’ 아이들을 가르치는 미정은 피아노를 애타게 원하면서도 마음껏 소리 내 연주하지 못한다. 자신이 처해 있는 처지가 피아노를 치기엔 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모텔엔 점점 손님이 줄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슬아슬하게 지탱하던 가식마저 유지하기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모텔을 찾은 한 남자는 다른 손님들과 달리 피아노를 흥미 있게 바라본다….
‘안녕, 피아노’는 창작 초연인 만큼 다소 엉성한 데가 없지 않다.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불분명한 면이 극의 집중도를 방해한다. 주위에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릴 정도로 어리숙한 아버지가 가족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좀팽이’처럼 군림한다. 이웃들이 쓰다 버린 물건들을 주워와 사용한다든지, 딸에게 숙박비를 받을 정도로 영악하게 처신하는 장면 등은 아버지의 전력과 어울리지 않는다. 딸 미정 역시 피아노에 대한 ‘순결한’ 갈망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같은 갈망이 단순히 모텔이라는 주위 환경 때문에 꺾일 정도로 미약한가 하는 의문을 떨치기 어렵다. 극 후반에 등장하는 미정과 사내와의 전화통화 부분 역시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요컨대, 극의 비약에 대한 논리적 전개가 불충분하다는 말이다. 천정하·김용준·이승연 등 출연.
이기쁨 작·연출의 연극 ‘호랑이를 부탁해!’는 로맨틱 코미디극이다. 하지만 대학로에 난무하는 여타 로맨틱 코미디물과는 달리 매우 탄탄한 서사 구성을 갖고 있다. 전래설화 ‘김현감호’에서 모티브를 따온 연극은 설화를 재해석, 오늘날에 걸맞은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현대 연극의 장에서 설화가 갖고 있는 비극적 사랑의 여운을 십분 살리는 작업을 거의 완벽하게 보여준다.
빚더미에 올라앉아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조폭 똘마니’ 김현은 한마디로 ‘방바닥 긁는 백수’다. 그는 어느날 편의점에서 우연히 윤원호와 맞닥뜨리게 된다. 현대여성답게 시크하면서도 꽉 막힌 원칙주의자인 원호는 껄렁대는 김현을 당연히 좋지 않게 본다. 하지만 두 사람은 우연찮게 얽히게 된다. 집에서 결혼을 강요받는 원호는 김현에게 가족 모임에서 자신의 애인 행세를 해주면 100만 원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돈이 궁한 김현은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애인이 되는 길은 녹록지 않다.
극은 단순히 사랑놀음에 그치지 않는다. 기억을 잃은 원호가 폐기당한 프로젝트 실험체로서 동물원에 갇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고, 김현은 동물원 청소부가 돼 원호의 곁을 지키는 결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김현감호’ 설화를 뛰어넘어 또 다른 애니미즘적 지평을 열고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매력적인 윤원호 역의 김희연과 김현 역의 권동호, 멀티남과 멀티녀로 등장하는 신창주와 한송희의 열연 또한 인상적이다.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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