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고금평 기자의 컬처홀릭>‘음원 사재기’ 부추기는 음악시장

오랜 시간에 걸쳐 가수 하나 만들어놓고, 방송사를 찾아갑니다. 출연 여부를 기다리다 음악 프로그램 담당 PD로부터 듣는 말은 이렇습니다. “(음원) 차트에 보이지 않네요. 그러면 우리도 어쩔 수 없어요.” 출연이 막힌 기획사 대표는 어떻게 홍보를 할까 망설이다 다른 기획사 관계자로부터 ‘신의 한수’를 듣습니다.

바로 ‘음원 사재기’. 정직과 성실이라는 가치로 시작하려던 파우스트의 꿈은 이때부터 메피스토펠레스의 꾐에 빠져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한 번 빠져든 타락의 길은 걷잡을 수 없습니다. 항간에는 중소 기획사 4곳이 각자 연간 5000만 원씩 모두 2억 원의 음원 사재기에 동참한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이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자, SM·YG·JYP·스타제국 등 소위 대형 연예기획사 4곳이 음원 사용 횟수 조작이 도를 넘어섰다며 최근 검찰에 수사 요청을 했습니다. ‘음원 사용 횟수 조작’은 브로커 등을 통해 음원 사이트에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특정 곡을 반복 재생, 차트 순위를 높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 같은 방식을 사용하면 손쉽게 ‘인기곡’으로 둔갑할 뿐만 아니라, 순위제 음악 프로그램에서 더욱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다고 합니다.

정부도 이 같은 움직임에 동참하고 나섰습니다. 음원 사재기를 금지하는 조항을 ‘음악산업진흥법에 관한 법률’안에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해 음원 사재기 기준을 마련하고, 사재기에 해당하면 저작권 사용료 정산 대상에서 제외해 수익으로 연결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이 골자입니다.

불법 음원 사재기에 대한 대형 기획사와 정부의 강력한 ‘조치’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깨끗한 음악산업 유통 구조를 개선시키려는 의도 또한 나무랄 데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뒷맛은 개운치가 않습니다. 양현석 YG 대표는 “좋은 음악을 만들어도 (사재기 때문에) 음원 순위가 밀리는 소규모 기획사의 현실이 안타깝다”며 “건강한 투자를 위해 다양한 콘텐츠가 공존하는 시장을 만들자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유력한 아이돌 그룹을 보유한 대형 기획사를 좇는 수많은 팬심이 이끄는 보이지 않는 음원 사재기, 이미 (소속 가수들의) 검증된 인지도로 늘 차트 상위권에 맴돌며 방송 출연을 ‘선택’할 권리를 지닌 대형 기획사의 막강한 파워, 음악보다 인기에 연연하는 방송사 PD의 숨겨진 ‘그늘’이 존재하는 한, 음원 사재기는 생존을 위한 하나의 투쟁으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최근 한 방송사에서 만난 중견 기획사 대표는 “음원 차트 중심으로 방송사 출연 여부가 결정되는 현실을 보다보면,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음원 사재기 유혹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든다”고 말했습니다. 음원 사재기를 부추기는, 순위 부활로 음악을 줄세우는 방송사 시스템 등 구조적 문제가 먼저 개선돼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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