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성·정념·기억’ 통해 본 도상해석학 창시자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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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바르부르크 평전 / 다나카 준 지음, 김정복 옮김 / 휴먼 아트

미술사가, 문화사가, 문헌학자이자 도상해석학의 창시자인 아비 바르부르크(1866∼1929)의 삶과 그의 지성의 역사를 풀어낸 평전이다. 1866년 함부르크의 부유한 유대인 은행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열세 살 때 장자 상속권을 동생에게 양도하는 대신 평생 자신의 책값을 지불해줄 것을 약속받은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는 본, 뮌헨,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문화심리학, 고고학과 미술사, 의학, 심리학, 종교사를 배웠으나 대학에 소속되지 않고 사재를 털어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미술에 관련된 문헌 약 6만 권을 수집했다. 1926년 방대한 장서를 바탕으로 개관한 바르부르크 문화학 도서관은 유럽 지식인 사회의 의미있는 중심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바르부르크가 제안한 ‘신(神)은 세부에 깃든다’라는 탁월한 모토나 ‘도상학적 영분석’이라는 이미지 연구의 방법론적 개념은 후대 연구자들에게 큰 영향을 남겼다. 하지만 그가 저작을 남기지 않은데다 그에 대한 연구도 많이 이뤄지지 않아 그에 대한 대중적 인식은 그리 높지 않다.

표상문화론 연구로 일본의 대표적 인문지성으로 꼽히는 다나카 준이 2001년 내놓은 책은 이 같은 불모의 영역의 문을 연 저작이다. 다만 저자가 이 독일 미술사가의 평전을 쓰게 된 것은 바르부르크에 대한 일본내 연구붐이라는 자장 안에서 나온 것이다. 일본에서는 1986년에 에른스트 곰브리치가 쓴 ‘아비 바르부르크 전기-어느 지적 생애’가 소개되었고, 1990년대 후반에는 바르부르크 학파를 다룬 책과 관련 전시회가 열렸다. 이런 분위기 속에 2001년 다나카 준의 이 책이 출간됐고, 잇따라 그의 저작집과 해설서가 나왔다. 일본의 이 같은 바르부르크 연구 움직임은 유럽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서구의 바르부르크 다시 보기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책은 그의 생애를 세 시기로 나눠, 각각 ‘양극성’, ‘정념’, ‘기억’이라는 표제를 붙여, 이 핵심어를 통해 바르부르크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양극성(1908∼1923)의 시기는 독일 제국에서 살아가는 유대인인 그가 극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은 시기다. 저자는 바르부르크의 이 같은 정신상태는 불안이나 강박 관념에 사로잡히기 쉬운 예민한 성격과 독일 제국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졸부 유대인 출신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결합돼 그의 정신이 양극성으로 분열됐기 때문이라고 추적한다. 이에 앞선 정념(1886∼1907)은 바르부르크의 르네상스 연구를 보여주는 핵심어다. 그는 이 시기에 르네상스인의 심리적 특성을 고전고대의 조형예술이나 문학작품에서 찾는데, 고대의 잔존(殘存)은 바르부르크가 평생 추구한 테마다. 이와 함께 기억(1924∼1929)도 그의 삶을 담아낸 표제어다. 1929년 10월 심장발작으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기 전까지 그는 문화학 도서관을 설립하고 도상 아틀라스 ‘므네모시네’ 프로젝트를 추구해나간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