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문10답 뉴스 깊이보기>“돌출 좌파의 숙청”-“反부패 투쟁의 신호탄” 평가 엇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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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시에서 22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된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 서기 재판은 말 그대로 ‘세기의 재판’이었다. 왜 보시라이 재판은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았을까. 5일간에 걸친 보시라이 재판은 끝이 났고 이제 최종 선고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보시라이스캔들은 중국의 압축성장에 따른 사회·정치적 모순을 응축하고 있는 사건인 만큼 향후 중국의 변화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 스캔들 어떻게 터졌나

보시라이 스캔들은 지난 2012년 2월 6일 당시 충칭시 공안국장이던 왕리쥔(王立軍)이 돌연 청두(成都)시 미 영사관에 망명을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왕이 망명 대신 중국 공산당 기율검사위원회의 조사를 받으면서 보시라이에 대한 각종 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3월 15일 보시라이가 전격 면직된 뒤 구속 조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사건의 내막이 드러났다. 지난 2011년 11월 15일 보시라이의 아내 구카이라이(谷開來)가 집안의 해외재산을 관리하던 닐 헤이우드를 독살했고 보시라이가 이에 대한 재조사를 요구하는 왕리쥔을 협박했다는 것이다.

2. 보시라이 혐의는

2012년 8월 20일 구카이라이는 헤이우드 독살죄로 사형유예 판결을 받는다. 같은 해 9월 18일 왕리쥔 역시 재판을 받고 이어진 선고에서 15년형을 판결 받는다. 왕리쥔과 구카이라이의 판결은 보시라이의 혐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국 검찰은 보시라이를 직권남용, 수뢰, 횡령 등 3가지 혐의로 기소했는데 바로 직권남용 부분이 왕리쥔을 협박해 구카이라이의 살인죄를 덮으려 했다는 것이다. 보시라이는 다롄(大連)국제발전공사 총경리 탕샤오린(唐肖林)과 다롄스더(大連實德)그룹 회장 쉬밍(徐明) 등에게 총 2179만 위안의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와 랴오닝(遼寧)성 성장 시절 500만 위안을 횡령한 혐의도 받았다. 두 혐의 모두 구카이라이 등을 통해 아들 보과과(薄瓜瓜)의 학비와 항공료, 외국에서의 주거비용 등으로 쓰였다고 중국 검찰은 주장했다.

3. 세계적 관심을 끈 이유는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는 그 출신부터 범상치 않다. 구카이라이는 1930년대 항일전쟁에서 공을 세운 인민해방군 구징성(谷景生) 장군의 딸이다. 보시라이는 중국의 8대 혁명 원로인 보이보(薄一波) 전 부총리의 아들이다. 보시라이는 한때 중국 공산당 상무위원 자리를 노렸던 인물이다. 좌파적 경제개혁안 소위 ‘충칭모델’을 제시해 좌파 정치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충칭모델이란 지방정부 소유의 국영기업을 위주로 경제개발에 나서 개발이익을 정부가 쥐고 주민에게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보의 정책은 당연히 많은 시민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충칭모델은 국영기업을 민영화해 효율을 높이겠다는 중국 중앙 정책과 대립되는 것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이런 이유에서 보시라이의 지지자들은 보가 정치적 희생양이 됐다고 주장한다.

4. 中지도자들의 호화생활은

재판과정에서 보시라이 부부와 아들 보과과의 생활의 단면들이 드러났다. 보시라이 부부는 중국의 대표적인 혁명 2세대다. 흔히 공산당의 붉은 귀족이라고 불린다. 중국 검찰에 따르면 보시라이의 아들 보과과는 아프리카를 여행할 때 쉬밍 회장의 전용기를 이용했다. 또 아프리카에서 희귀한 동물의 고기를 반입해 가족들이 회식을 하기도 했다. 보과과는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재학 당시 교수와 같은 반 학생 등 40여 명을 중국으로 초대했을 때에도 전화 한 통으로 항공료와 5성급 호텔 숙박비 등을 쉬밍 회장으로부터 지원받았다고 중국 검찰은 주장했다. 또 보시라이 부부는 프랑스 니스에 타인 명의로 호화별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5. 새롭게 드러난 사실들은

보시라이는 혐의를 벗기 위해 사적인 내용들을 폭로했다. 먼저 횡령 혐의를 벗기 위해 “랴오닝 성장 당시 정부가 있었다”고 폭로했다. 보시라이는 “당시 아내 구카이라이가 중학생이던 아들을 데리고 유학을 떠난 이유가 자신의 외도에 대한 반발이었다”며 “당시 유학비용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주장을 했다. 또 왕리쥔의 증언에 대한 신빙성을 낮추기 위해 “왕리쥔이 아내를 연모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보시라이 증언을 통해 구카이라이가 충칭시 공안국을 쥐락펴락했다는 사실도 새롭게 드러났다. 왕리쥔의 부하들에게 조사를 직접 지시했고 왕리쥔이 미 영사관으로 도주하자 왕을 정신병자로 몰려는 계획도 구카이라이가 직접 제시했다고 보시라이는 주장했다.

6. 재판, 왜 어떻게 공개됐나

보시라이 재판은 법원의 공식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를 통해 문자로 공개됐다. 중국의 사법제도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재판이 시작되면 문자를 통해 “재판장이 개정을 선언했다”는 짧은 문자가 웨이보를 통해 전달된다. 검찰의 증인 심문이 시작되면 “증인 심문 중”이라는 문자로 재판 진행 상황을 알렸다. 심문이 종료되면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심문 속기록 문서가 그대로 복사돼 웨이보에 게재됐다. 관련 사진도 공개됐다. 중국 매체들은 이 같은 조치에 대해 “법에 따라 부패사범을 공정히 처벌하는 것을 보여줘 현 지도부의 부패척결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외신들의 취재를 통해 공개내용이 철저한 검열을 거쳤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연출된 쇼”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외신들은 법원 웨이보를 통해 공개되지 않았지만 보시라이가 조사를 받는 중 27차례 기절했다고 진술했으며 가끔 영어로 답변을 하다 재판장에게 주의를 들었다고 전했다.

7. 재판의 남은 절차는

재판을 진행한 지난시 중급법원은 26일 재판심문을 끝내며 향후 날을 선택해 선고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보시라이가 조사를 통해 일부 죄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15년 안팎의 유기징역형을 선고 받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했다. 그러나 보시라이가 자신의 진술을 뒤집고 모든 혐의를 부인하면서 선고 형량에 대한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다. 재판이 사전 각본대로 진행된 만큼 15∼20년 유기징역형을 받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는 반면 괘씸죄가 적용돼 사형 유예의 중형이 선고될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중국의 재판은 3심제인 우리와 달리 2심제다. 1심 선고가 나오면 보시라이는 상소를 할 수 있다. 보시라이는 현재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만큼 상소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게 중화권 매체들의 분석이다. 홍콩의 밍징(明鏡)은 지난 27일 보시라이는 반드시 상소할 것이라며 2심은 더욱 재미있을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8. 中사법제도 어떻게 다른가

중국은 서구식 ‘삼권(입법·사법·행정) 분립’을 채택하지 않은 국가다. 형식상 법원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국회 격) 상무위원회 소속이지만, 실제로는 공산당 정법위원회 지휘를 받는다. 법원도 공산당의 일개 조직인 셈이다. 지방재판소의 인사권과 예산권을 지방정부가 지니고 있다. 자연히 정부기구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여기에 중국은 2심제다. 가벼운 사건은 초급인민법원이 1심, 중급인민법원이 최종심을 담당한다. 보시라이 사건처럼 중요한 재판은 중급인민법원이 1심을 맡고, 고급인민법원이 최종 판결을 한다. 중국에서 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사법고시를 통과해야 한다. 지난 1986년 처음으로 법률사 자격시험이 도입됐으며 지난 2002년 현재의 사법고시로 개편됐다. 일부 지방에서는 법률사 자격증이 없는 이들도 판사, 검사직을 맡기도 한다. 인력 부족이 이유다. 보시라이 재판이 보시라이와 무관한 산둥성 지난에서 열린 것은 ‘연고지 외 재판(異地審判)’이란 사법 관례를 따른 것이다.

9. 중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현재 중국 사회의 가장 큰 부담은 빈부격차에 따른 사회적 불만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보시라이는 스스로 극좌노선을 강조하며 시 재정을 이용한 복지정책을 펼쳐 인심을 얻었다. 일부 좌파 정치인들은 보시라이의 이 같은 점을 높이 샀다. 반면 중국 우파 지식인들에게는 반감을 샀다. 중국의 한 저명한 교수는 보시라이에 대해 “포퓰리즘 정책으로 실제 성과는 없으며 내부 부패만 있다”고 혹평했다. 보시라이의 몰락은 중국 좌우파 대립에서 극좌적인 돌출을 배제해 낸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보시라이의 재기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들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다만 재판과정에서 보시라이가 좌파의 정신적 지주로 남을 가능성이 엿보였는데 이는 중국 지도부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도 있다.

10. 제2의 보시라이는 없을까

신화(新華)통신 등 중국 주류 매체들은 “이번 보시라이 재판을 통해 중국 당국이 공정한 법적용에 따른 부패사범 처벌의지를 보여줬다”고 평했다. 반부패 투쟁이 더욱 가열될 것이라는 의미다.

당장 저우융캉(周永康) 전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그 다음 대상으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지난 27일 중국 석유천연가스그룹(CNPC)의 리화린(李華林) 부사장 등 고위관련자 4명이 잇따라 기율 위반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저우융캉은 ‘석유방(석유 이권 인맥)’의 핵심 인물로 베이징석유학원을 졸업해 1967년 다칭 유전 수습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 31년간 석유 분야에 종사했다. 1996∼1998년에는 CNPC 사장을 지냈다.

미국의 중화권 매체 보쉰(博訊)은 28일 이번에 조사를 받는 CNPC 고위 간부들이 저우융캉 일가가 1000억 위안(약 18조 원) 규모의 재산을 불리는 과정에 개입한 의혹이 있다고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베이징 = 박선호 특파원 shp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