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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3년 09월 06일(金)
문학·예술속 1300개 가상공간 위치·면적 정보담은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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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상상한 거의 모든 곳에 관한… / 알베르토 망겔·자니 과달루피 지음, 최애리 옮김 / 궁리

소설가 길은 어느 날 파리 밤거리를 산책하다 술에 취한 승객들에게 이끌려 1920년대 풍의 클래식 자동차를 타게 된다. 파티장에 들어간 뒤, 파티의 주최자가 작고한 장 콕도라는 사실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는 파티장에서 피카소,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등 1920년대에 활약한 전설적 인물들을 만나면서 황홀경에 빠진다. 이는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타임머신을 탄 듯 과거의 장소로 이동한다.

이처럼 상상의 장소를 찾는 여행은 우리가 답답하고 숨막히는 현실에서 잠시 탈주하는 듯한 공간이동의 쾌감을 안겨준다. 톨킨의 미드어스나 마법의 나라 오즈, 해리 포터의 호그와트, 하루키의 세계의 끝, 아틀란티스 등은 아예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문학 등 예술작품에 등장하는 상상의 장소들로 지리백과사전을 만들다니. 어떻게 보면 황당한 책이다. 하지만 책에 관한 책으로 일가를 이룬 작가 알베르토 망겔과 ‘불가능의 안내서’를 편집한 작가이자 편집자인 자니 과달루피가 겁없이 쓴 이 사전은 흥미롭고 위트가 넘친다. 두 몽상가가 힘을 합쳐 만든 이 사전에는 무려 760작품에 나오는 상상의 나라 1300곳이 망라돼 있다. 방대한 지리 백과는 독특한 상상력의 살집을 키워줄 뿐 아니라 상상의 미로를 통과하는 듯한 통렬함을 자아낸다.

우선 파리의 퐁텐블로 숲 아래에 있는 기이한 나라들을 여행해보자. 앙드레 모루아의 ‘뚱보 나라와 홀쭉이 나라’(1930년)에 나오는 두 나라다. 이 사전에서는 마치 실제 있는 나라인 것처럼 이 나라들을 찾아가는 길을 친절하고 상세하게 안내한다. 퐁텐블로 성 근처의 로슈 쥐멜, 즉 쌍둥이 바위로 가라. 그곳에는 땅속으로 가는 긴 계단이 있다. 이 지하 세계는 푸르고 눈부신 가스로 채워진 커다란 기구(氣球)들로 조명된다. 뚱보 나라 사람들은 친절하고 행복한 사람들이며 그저 먹고 마시기 위해 산다. 이 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둥글고 푹신하며, 건축물은 요란하고 미술은 바로크풍이다. 홀쭉이 나라 사람들은 놀랄 만큼 깡마르고 못처럼 단단하며 겨자처럼 누렇고, 미친 듯 급하게 산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공중의 섬’ 라퓨타의 경우 상세한 도판이 곁들여져 더욱 흥미를 자극한다. 사전에 따르면 하늘 위를 떠도는 섬 라퓨타는 원형이며, 지름이 7837야드, 두께가 300야드가량 되며 총 면적은 1만 에이커 정도다. 섬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은 천연 자석 덕분이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만든 ‘세계의 끝’은 위치를 알 수 없는 도시다. 도시 전체가 7m 높이의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벽을 넘을 수 있는 것은 새들뿐이다. 이 도시에 들어가려면 문지기에게 그림자를 맡겨야 한다. 그림자와 헤어져 도시에 들어간 자는 기억을 잃고, 그림자가 죽으면 마음을 잃게 된다. 생활은 검소하지만 나름대로 부족함이 없다. 아무도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며 다투지도 않는다. 노동은 하되 모두 자기 노동을 즐기고 있다. 강요당하거나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1985년에 나온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그리는 이상 세계다.

역시 일본 작가 아베 고보(安部公房)의 소설 ‘모래의 여자’(1962년)에 나오는 사구는 일본 어딘가에 있다. S역이라는 곳에서 기차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지형의 기복이 몹시 심한 고장이 나타난다. 마을을 돌아보면 정상에 가까울수록 깊게 파인 구멍이 마을 중심을 향해 몇 겹으로 줄지어 있다. 설령 막차가 끊어졌으니 하룻밤 묵어가라는 권유를 받아도 이를 뿌리쳐야 한다. 자칫하면 20m가 넘는 모래 구덩이 속에 평생 갇혀 살아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있는 필요의 방. 간절히 필요로 하는 자에게만 열린다. 7층의 어느 벽걸이 맞은편에 있다는데, 빈 벽 앞을 세 번 왔다갔다하면서 필요한 것을 간절히 생각하면 열린다. 그래서 집 요정들은 이 방을 ‘왔다갔다방’이라고 부른다. J K 롤링의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2003년)에 나오는 유명한 방이다.

이 사전은 고전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문학작품, 영화, 음악, 오페라 등에서 500여 작가가 그려낸 환상적인 세계를 여행한다. 단순한 지명사전을 넘어선다. 장소들의 위치, 지형, 생태, 역사, 사회, 제도, 풍습까지 여러 정보를 망라한다. 그러면서도 원전이 제공한 정보 외에는 아무것도 지어내지 않았다. 정보를 취합한 뒤 사전에 올릴 때는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들(또는 그 가명)은 제외한다 ▲천국과 지옥, 미래 세계는 제외한다 ▲지구상의 장소만 포함한다는 원칙을 따랐다. 한국어판에는 해리 포터,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80여 상상의 장소가 원저자의 동의를 받아 추가됐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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