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년 채용박람회>“나이앞에 ‘5’자 붙으면 쫓겨나는 처지”

“대부분의 기업은 나이 앞에 ‘5’자가 붙으면 일단 싫다고 합니다. 50대에 접어들어 일에 대한 노하우가 생기고, 아직 부양해야 할 가족도 있는데… 참 답답한 현실입니다.”

12일 오전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의 주최로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3 중장년 채용한마당’에는 박람회 개막 전부터 재취업을 하기 위해 모여든 40∼60대 구직자들로 넘쳐났다.

박람회장에서 만난 구모(53) 씨는 “1년 가까이 구직 활동을 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찾아가는 기업마다 퇴짜를 맞았다”며 “결혼을 늦게 해 중학교 2학년인 딸이 있어 안정적인 소득이 필요한데, 내 능력을 알아주는 기업이 없어 참 답답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박람회장 접수대 한쪽에서 형광펜으로 줄을 쳐가며 박람회 안내장을 보던 신모(63) 씨도 답답함을 토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신 씨는 “중견기업을 다니다 10여 년 전부터 중고 물건을 사서 되파는 일을 했는데, 경기침체로 최근 1년 새 수입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며 “하던 일을 접고 안정된 직장을 얻어야 하는 처지인 만큼 탄탄한 회사에서 관리직으로 나를 채용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학력 전문직 출신 중장년층도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 5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정년퇴직을 한 홍광표(60) 씨는 “30년 넘게 매일 아침 출근을 하다 출근할 곳이 없어지니 마음이 허하고 답답하다”며 “내가 바라는 것은 고급 일자리에 재취업을 하는 게 아니라, 내 능력과 경력을 알아봐 주는 기업에 들어가 그저 매일 일을 할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포스코에서 20여 년간 일을 한 뒤, 중소기업에 10여 년간 다니다 최근 일을 그만둔 이재성(59) 씨도 “박람회장에 와 보기는 했는데, 나이가 60에 가깝고, 연구원으로 일한 경력 때문에 나를 원하는 기업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이 나이 먹어도 내가 평생 일한 직종에서 젊은 사람들에 버금가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꼭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중소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채용 창구에서 만난 김모(여·48) 씨는 “일본어를 전공해 중견기업에서 해외 마케팅 업무를 하다 1년 8개월 전에 그만뒀는데, 구직 활동을 한 8개월 동안 수십 곳의 회사에서 고배를 마셔 ‘실패한 인생’을 산 것 같은 자괴감이 든다”며 “전경련에서 박람회를 마련해준 만큼 이번 박람회장에서 꼭 좋은 직장을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고양 =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