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먹은’ 상상력 풀어주면 당신도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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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진-초일류들의 뇌사용법 / 조나 레러 지음, 김미선 옮김 / 21세기북스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불리는 미국의 팝가수 밥 딜런은 지난해 가장 강력한 노벨문학상 후보 중 한 명이었다. 가수가 노벨상 후보에 오른 것은 전례없는 사건이다. 2005년 영국의 잡지 ‘언컷(Uncut)’의 조사 결과, 밥 딜런의 노래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이 영화, 음악, 책, TV 등을 통틀어 세계를 변화시킨 최고의 대중문화 작품으로 꼽혔다. 1965년 런던 로열 앨버트 홀 공연을 마친 뒤 딜런은 음악에 대한 열정이 소진된 상태였다. 그는 신문에 난 자신의 기사를 읽을 때마다 “신이시여, 내가 내가 아니어서 고맙습니다”라고 한탄했다. 그는 영국 투어를 마치고 미국으로 복귀하자마자 자신의 오토바이에 올랐다. 뉴욕시를 벗어나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우드스톡의 빈집으로 향했다. 그는 작곡과 안녕했고, 기타조차 가져가지 않았다. 빈집에는 공책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가장 단호하게 작곡을 그만두고 결심한 그때, 딜런은 이상한 느낌에 압도당했다. 연필을 쥐고 휘갈기기 시작한 그는 몇 시간 동안 20쪽에 이르는 글을 미친 듯이 토해냈다. 그 자신조차 조절하지 못하는 상상에 내맡긴 채. 그것은 소름 돋는 발견이었다. ‘라이크 어 롤링 스톤’의 탄생이다. 이 노래는 로큰롤에 혁명을 일으켰다.

책에 나오는 이 에피소드를 보면 위대한 상상력은 생각 못했던 때에 의외의 장소에서 터져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상상력이 제약에서 어떻게 고삐를 풀고 날아오르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예다. 저자는 “족쇄에 발을 들임으로써 상자를 부수고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어떤 상상력은 붐비는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홀짝거릴 때 가장 잘 작동하고, 어떤 상상력은 소파에 앉아 차가운 맥주를 마시면 작동에 도움이 된다. 저자도 다양한 상상력 훈련을 거쳐 뇌과학 분야의 슈퍼스타가 됐다. 1981년생인 저자는 노벨상 수상자인 에릭 캔들의 실험실에서 연구 활동을 했으며, 뉴욕의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등 다채로운 이력을 쌓았다. 작가가 되려면 남다른 체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찍부터 깨달은 사람인 셈이다.

픽사 애니메이션 영화사도 예전에 델몬트 통조림이 있던 자리였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과학자 사무실과 애니메이터 사무실, 관리자 사무실을 따로 짓기로 했던 설계도를 찢어 버렸다.

3채의 건물 대신 통풍이 잘되는 아트리움을 가운데 둔 광활한 공간이 들어섰다. 아트리움은 건물 중앙에 유리로 지붕을 만들어 조성한 넓은 공간을 뜻한다. 건물 가운데 커다란 빈 공간은 직원들이 소통하면서 서로에게 말을 거는 열린 지대였다. 통풍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의 바람도 자유롭게 드나들었다.

한국에서 창조경제를 화두로 많은 사람들이 상상력을 조탁하는 데 애를 쓰고 있지만 수많은 천재들 속에서만 답을 찾는 것은 잘못된 접근방법이다. 상상력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남다른 재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상력을 예술가나 발명가나 창의적인 사람들만을 위해 비축된 것으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운영체제에 내장된, 다시 말해 가장 필수적인 프로그래밍 코드 안에 배선된 창의적 충동을 가지고 있다. 매 순간 뇌는 자동으로 새롭게 연합하면서 끊임없이 일상의 X를 뜻밖의 Y로 연결한다는 것. 창의성은 사고 절차에 대한 폭넓은 개념이다.

저자는 겁먹은 상상력을 풀어놓아 주라고 얘기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든다. 세컨드시티는 세계 최대의 즉흥연기학교다. 복도에서 시끄러운 웃음소리가 터지고, 배우들이 초등학생처럼 마구 뛰어다닌다. 1959년, 세컨드시티가 세워졌을 때 그곳은 미국 최초의 즉흥코미디 극장이었다. 그 착상은 터무니없어 보였다.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아무 말이나 지어내는 것을 누가 보고 싶어 할까. 당시 연기의 개념은 오직 대사를 외우는 것이었다. 세컨드시티는 사실 아동용 연극 게임에서 기법을 과감하게 빌려 왔다. 유치함이 핵심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에게 그토록 해방감을 주는 활동이라면 전문 배우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수십 년이 지나면서 이곳은 미국 코미디계의 최고 인물들을 배출하는 명문 학교가 됐다.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 역시 처음부터 표현력이 풍부한 연주가였던 것은 아니다. 그가 음악적 감정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은 잊을 수 없는 좌절을 겪은 다음이었다. 1989년, 요요마는 한 미국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열아홉 살이었고 그때까지 전력질주를 해온 상태였어요. 곡은 속속들이 알고 있었지요. 하지만 거기 연주회장에 앉아서 모든 음을 정확하게 연주하는 동안 의문이 들기 시작했어요.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정확하게 연주하면 뭐가 달라지는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잖아. 청중만 따분한 게 아니라 나 자신도 따분해.’ 완벽함은 그다지 소통 능력이 없어요.” 완전무결한 연주의 지루함이 요요마에게 가르쳐준 것은, 완벽함과 표현 사이에는 흔히 타협점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말한다. “실수만 걱정하다 보면 아무것도 전달하지 못하게 됩니다. 음악을 하는 목적은 이미 사라졌을 겁니다. 그건 사람들이 뭔가를 느끼게 하는 겁니다.”

책은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생활 속에 그냥 스쳐 지나갈 작은 현상조차 날카롭게 관찰하는 것이야말로 상상력의 발전기라는 것을 명징하게 설명해 준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