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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게재 일자 : 2013년 10월 04일(金)
‘배고픈 자유’ 버리고 ‘칼을 쥔 노예’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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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검투사의 일생 / 배은숙 지음 / 글항아리

검투사의 결투는 인간의 ‘구경 본능’을 자극하며, 피의 광기는 또다른 광기를 부른다. 관중은 일 대 일로 생사를 건 검투사들의 피튀기는 결투를 보며 희열과 쾌감을 느꼈다. 검투사의 생사 결정권은 관중에게 있었다. 관중들은 두 검투사가 무기를 휘두를 때 ‘왼쪽이 비었다. 지금 찔러라’라고 온갖 훈수를 두느라 소란을 떨었다. 한 검투사가 상대방에게 결정적 승기를 잡은 순간에는 사위가 정적에 싸인 듯 고요해진다. 또한 싸우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검투사는 땅에 방패나 검, 삼지창 등 무기를 떨어트리고 왼손 검지를 편다. 이때 살아남은 검투사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쪽이 아니다.

관중들은 상대의 주먹에 맞아 이빨이 덜럭거릴 정도로 용감하게 싸웠으면서도 정신이 살아있는 사람은 살려줬다. 관중이 패배자가 열성적으로 싸우지 않았다고 판단할 때, 경기 주최자는 바로 숨통을 끊을 것을 선포했다.

책의 부제는 ‘살육의 축제에 들뜬 로마 뒷골목 풍경’이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이면서도 마치 골목길 풍경을 만나는 듯 친근하다. 현대적 관점에서 로마인들의 잔인성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검투사와 로마인 시각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의 삶과 검투사 경기에 대한 묘사가 르포르타주를 보는 것처럼 꼼꼼하다. 당대의 사회적 관계와 문맥을 디테일하게 연구한 결과다.

2008년 ‘강대국의 비밀’이란 책에서 로마의 힘줄 동력인 군대 문제를 다룬 저자가 이번에는 5년간의 후속연구 끝에 로마 검투사들의 일상생활을 복원했다. 검투사의 처절한 삶은 최후에 선택받은 소수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는, 지금 이곳에서의 삶에도 많은 교훈을 준다.

1∼2세기에 활동한 로마사가 타키투스의 말처럼 연극, 전차 경주, 검투사 경기는 로마인들이 즐긴 대표적인 구경거리였다. 경기를 알리는 광고까지 등장했다. 글라디우스라는 검을 사용하는 검투사들이 벌이는 경기는 로마의 존재 자체를 상징할 만큼 로마인들의 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당시 시대상황을 명확히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왜 자유민 출신의 검투사가 존재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책에 따르면 검투사가 되면 시민으로서의 권리는 모두 박탈당하고, 천한 노예 신분으로 전락했다. 가난 대신 인기·명성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로마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잃어버려 ‘자발적 거세’라고 표현되는 자유민 출신의 검투사는 싸움 근성이 더 강했다. 이들이 관중들로부터 큰 인기를 끈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전쟁포로나 범죄자 출신의 검투사보다 자유민 출신의 검투사들의 싸움 근성이 더 강했기에 검투사 양성소 운영자들은 자유민 출신을 더 선호했다. 체격이 좋거나 근성이 보이는 전쟁포로들은 검투사로 발탁되기는 하지만 속박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싸워야하므로 열정이 떨어졌다. 반면 자유민 출신의 검투사들은 사회에서 더는 희망이 없는 터에 마지막으로 택한 직업인 만큼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

여성 검투사들이라고 해서 마치 유희를 하듯 싸움을 한 것은 아니다. 로마인들은 여성 검투사를 밤에 횃불 아래서 싸우게 했는데 더욱 신비스럽고 은은한 매력을 뿜어냈다. 투구도 쓰지 않은 이들의 싸움은 더욱 잔혹했다. 휘날리는 긴 머리카락은 칼에 맞았을 때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적 효과를 돋보이게 했다. 근육으로 다져진 여성과 몸집으로 밀어붙이는 여성이 맞붙을 때는 관중들의 동정심을 유발하기도 했다. 시간이 갈수록 작은 여성에게 무지막지한 힘을 휘두르는 몸집이 큰 여성을 비난하게 됐다는 것이다. 폭군들은 상류층도 경기장에 강제로 투입했다.

저자는 “상류층이 검투사로 나서는 것을 문서로 엄격히 금했지만 이런 규정은 이후에도 잘 지켜지지 않았다”며 “38년 칼리굴라 황제는 26명의 기사를 경기에 동원했고, 58년 네로 황제는 부나 명예에서 조금의 흠도 없는 400명의 원로원 의원과 600명의 기사를 경기장에서 싸우게 했다”고 썼다.

검투사들에게는 보리가 주식이어서 검투사들을 ‘보리 먹는 남자들’로 불렀다고 한다. 2세기 검투사 양성소에서 의사로 근무한 적이 있고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주치의였던 갈레누스는 보리가 지방층을 형성해 상처를 보호해주지만 검투사들을 뚱뚱하고 활력 없게 만든다고 했다.

저자는 경기가 벌어지는 장면을 검투사와 관중의 시각으로 살펴봤는데, 마치 현장을 중계하는 듯하다. 오전 일정으로 야생동물 사냥 경기, 정오 일정인 범죄자 처형식, 오후에는 경기의 최고봉인 ‘검투사 경기’ 등 경기가 진행되는 순서대로 하루의 긴 일정을 따라간다. 싸우는 검투사의 마음과 이를 바라보는 관중의 모습도 생생하게 담아냈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munhwa.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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