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共 경제대통령’ 뜨거웠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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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익 평전 / 고승철·이완배 지음 / 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한국 경제는 지속적으로 모든 면에서 나아지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국민총생산 성장률은 9.6%였으며 고정투자는 17.2%, 상품 수출은 7.4% 각각 늘어났습니다. 한국 경제의 장기 전망에 관한 낙관론의 또 다른 중요한 논거는 국민과 정부 간의 관계를 들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자신들과 자손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힘든 일도 꺼리지 않습니다. 또 한국 정부는 지난 수년 동안 내외 환경의 변화에 실용주의적인 방법으로 경제 정책을 적응시키는 능력을 보여 왔습니다.”

1983년 10월 9일 버마 아웅산 테러로 순직한 김재익 박사가 남긴 마지막 연설문의 일부다. 1980년 경제수석에 오른 그는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도 세계 유수의 경영자들 앞에서 한국 경제의 낙관적 전망을 힘찬 어조로 설파했다.‘5공화국의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며, 개방 경제의 기틀을 닦은 김재익 박사의 평전이 그의 사후 30년 만에 출간됐다. 그동안 몇 권의 추모집이 발간됐지만 삶 전체를 조망한 기록은 처음이다. 한국전쟁 후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소년 김재익’부터 서울대 졸업 후 한국은행에서 시작한 첫 직장생활, 자유주의에 눈을 뜬 스탠퍼드대 유학 시절, 유신정권과 신군부 아래에서 시행한 경제정책 성과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과 업적을 총망라한다.

평전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책은 1970∼1980년대 경제 기적을 일으킨 한국의 현대사이기도 하다. 1970년대 김재익이 주도한 부가가치세 제도와 ‘사회개발’ 개념의 도입, 그리고 1980년대 그가 이룩했거나 시도했던 물가 안정, 수입 자유화, 예산 동결, 통신혁명, 금융실명제 등은 지금 한국 경제를 든든히 지탱해주는 버팀목이다. 그의 경제 철학을 바탕으로 1980년대 후반 한국은 건국 이래 최고의 호황기를 누린다. 이는 ‘전두환 시대’에 대한 정치·역사적 평가와 별개로, 진보와 보수 모든 진영의 공통된 평가이다. 지은이 역시 그가 5공화국에 몸을 담았다는 이유로 그를 보수의 한 축에 세우는 것을 거부한다. 그는 경제적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때로, 권력층에 맞서 싸울 줄도 알았기 때문이다. 책은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도입된 금융실명제를 1982년 이미 김재익이 신군부와 격렬하게 충돌하면서도 추진하려 했던 사실을 무려 열 페이지에 걸쳐 서술한다.

“김재익이 도입을 추진했던 금융실명제는 당시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1980년 신군부가 집권한 이래 권력 내부에서 피차 정치적 목숨을 내걸 정도로 격렬한 다툼을 벌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평소 권력투쟁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누구와도 쉽사리 충돌하지 않았던 김재익도 이 시기만큼은 실로 비장하게 그 안을 추진해 나갔다.”

또, 책은 경제적으로는 철저한 시장주의자였지만, 정치적으로는 무색무취했던 김재익이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참여를 결심하던 때를 회상한다. 김재익은 당시 대학생 아들에게 “왜 독재 정권에 협력하려 하십니까”라는 항의를 받는다. 김재익은 흔들림 없이 대답한다. “경제의 개방화와 국제화는 결국 독재 체제를 어렵게 하고, 시장경제가 자리잡으면 정치의 민주화는 자연히 따라온다. 아빠가 하려고 하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