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녀는 스스로 죽었나, 사회적 죽임 당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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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사 깊이 읽기 / 주진오·김선주·권순형·이순구·박정애·김은경 지음 / 푸른 역사

한 명의 역사학자와 다섯 명의 여성사 전공자들이 함께 쓴 ‘한국 여성사’이다. 선사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제강점기와 해방에 이르는 한국사의 통사 흐름을 따라가며 한국여성들의 삶을 흥미롭게 다뤘다.

흔히 역사는 정치사·권력자 중심인 데 비해 이 책은 문헌에 나오는 사례를 통해 당대 여성의 삶을 건져올려 구체적으로 복원시켰고, 신라시대 여왕, 현모양처, 열녀, 호주제 등 익숙한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며 기존의 통념에 도전한다. 책은 시대적 조건을 헤쳐나온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미시사이자 생활사이며 역사에서 소외된 존재를 부각시킨 하위 역사책이다.

이 같은 작업은 당연히 여성들을 구속했던 사회적 규제와 억압의 원인을 추적하게 되는데, 역사 속 불평등 기제를 탐색하는 것은 결국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정치적이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빛나는 이 책의 미덕은 태생적으로 정치적이지만 실제 내용은 이데올로기나 정치적이라기보다는 때로는 옛날 이야기처럼 재미있고 흥미롭다는 것이다.

책은 선사시대 여성(1장)부터, 호주제가 어떻게 한국사회에 정착됐는가를 살펴본 마지막 장까지 시대 순서에 따라 배열된 12장으로 구성돼 있다. 저자들은 선사시대의 여신 숭배를 살피고, 왜 신라시대에만 여성왕이 존재했는지를 추적하고, 고려시대 귀족부인의 삶을 재구성해 공식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여성의 구체적 삶을 촘촘하게 살려냈다. 또 정치사에선 스캔들로 치부된 성적 욕망을 틀로 삼아 고려시대 남녀상열지사와 혼인제도를 재구성하기도 한다.

우리들이 흔히 한국의 전통으로 알고 있는 ‘출가외인’이라는 관습이 조선시대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피는 부분도 흥미롭다. 즉 조선시대 혼인제도의 변화에 따라 여성의 정체성이 딸에서 며느리로 변했는데, 실제로는 이 변화가 그렇게 단단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알고 있는 신사임당도 실제로는 며느리보다 딸로서의 정체성이 강했고, ‘출가외인’이라는 말이 강조된 것은 결국 여성들이 출가외인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이어 열녀는 과연 스스로 죽은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죽임을 당했는가라는 물음을 던진 뒤 조선시대 열녀는 당대 최고의 가치를 실현해서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방법이었다며 결국 여성들의 자기파괴적 사회적 성취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런 억압적인 사회 속에서도 조선후기에 성리학을 연구한 여성지식인들이 등장했음을 살펴봄으로써 ‘조선의 여성=현모양처’라는 일반적 등식을 깬다. 근대 이후에는 신여성이 등장했지만 남성들이 이들에게 보낸 우려의 시선과 결국 그 연장선상에서 신여성의 삶을 어떻게 스캔들화했는지도 추적했다. 이와 함께 빨치산, 여자의용군, 월남여성, 특수위안대, 전쟁미망인 등 공식 역사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해방 직후의 여성들을 소개하고, 일본 식민지 잔재인 호주제가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현실 정치의 요구에 따라 공고하게 됐는지의 과정도 자세하게 보여준다.

각 장의 뒤에는 핵심적인 사료 부분을 직접 인용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또 각 주제를 더 이해하기 위한 추천 도서 목록도 정리했다. 상명대에서 한국여성사를 강의하는 필자들이 7년간 수십 차례 각자의 원고를 공동으로 검토하고 토론하면서 만든 결과물이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