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사람 아니더라”… 富·권력 모두 손에 쥔 ‘슈퍼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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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크라트 /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지음, 박세연 옮김 / 열린책들

몇 년 전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상위 1% 부자들의 분포와 소비 패턴 등을 분석한 특집을 내보낸 적이 있다. 금융위기를 거쳤는데도 상위 1% 부자들 가운데 금융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더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임금은 근로자의 42배였다. 2012년에는 380배로 뛰어올랐다.

기자는 얼마 전 서울에서 멀지 않은 경기도 한 도시의 경관 좋은 산기슭을 걷다가 “이곳은 뱀이 많으니 출입하시면 안 됩니다”라는 푯말을 발견했다. 이 주변 마을에 사는 친구에게 들으니, 그 울타리 안에는 뱀이 우글거리는 대신 2개짜리 호화 수영장과 일식, 프랑스식 등 각 나라별 셰프가 일하는 고급 식당을 갖춘 별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다양한 스타일의 별장을 갖춘 그 지역 전체가 한 사람의 소유라고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언론인이자 산업전문가인 저자는 1%도 아닌 상위 0.1% 최상층 거부들의 삶과 가치관을 파헤치고 있다. 눈부신 세계화 추세, 첨단 기술혁명과 지식의 발전으로 시간과 공간이 압축된다. 기술혁명과 세계화 바람은 산업혁명에 필적할 정도로 엄청난 경제변혁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그 혜택을 입은 글로벌 슈퍼 엘리트들은 점점 더 부유해지고 있다. 그들은 더 부유해졌지만 점점 더 끼리끼리 뭉치며, 일반 시민들과 동떨어진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나중에 슈퍼 엘리트들과 인맥을 맺으려면 초등학교는 물론 아예 아이를 낳을 때부터 강남의 명문 조산원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사립초등학교에 보내는 것도 미리미리 뛰어난 친구들과 사귀기 위한 것이다. 경제가 고도로 발달하면 정보문화 인프라 확산과 정부의 양극화 해소책, 복지대책 등으로 소득 격차가 줄어들 것이라는 일반인의 기대와 달리 실제 세계 경제의 소득 불평등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심화되고 있다. 파이는 커졌지만 슈퍼 엘리트들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큰 조각을 차지하는 셈이다.

‘플루토크라트’는 그리스어로 부를 의미하는 플루토스(Plutos)와 권력을 의미하는 크라토스(Kratos)가 합쳐진 것으로 ‘부와 권력을 모두 손아귀에 쥔 부유층’을 말한다. 억만장자들은 같은 나라의 시민들이 아니라 자신과 더 많은 공통점을 지닌 세계적인 동료 부자들과 끈끈한 협력관계를 맺는다. 뉴욕, 홍콩, 뭄바이 등 어디서 살든 간에 계속해서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들이 폐쇄적으로 뭉치면서 다른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무시하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드러낸다.

이런 갑부들의 삶을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핌코의 CEO 모하메드 엘에리언은 저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마을 전체가 가난으로 찌들어 가는 상황에서 한 집만이 계속해서 더 부유해진다고 해봅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부잣집의 행복을 마을 전체의 행복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일부 엘리트들은 너무나도 동떨어진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억만장자들이 영국의 축구클럽과 신문사를 사들이고, 멕시코 통신 재벌이 ‘뉴욕 타임스’의 두 번째 주주로 올라선다. 중국의 경우 소공자로 불리는 권력층이 플루토크라트 집단으로 떠올랐다. ‘후룬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중국에 10억 달러 이상의 부자가 271명에 달하며, 부자 순위 1000위 안에 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3억1000만 달러가 필요하다. 책은 중국의 정치적 특성은 정부가 갑부들의 힘을 일시에 빼앗아 버릴 수 있는 점이라고 꼬집는다.

“소공자들은 중국 지도층의 자녀들로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핵심적 정치 파벌을 이루고 있다. (중략) 오늘날 중국의 부자 목록은 곧 미래의 죄수목록이다. 2002년 상하이 지역에서 부동산 사업으로 성공을 거둬 당시 자산이 3억2000만 달러에 이른 저우정이(周正毅)는 중국에서 11번째 부자였지만, 2003년 부패혐의로 수감됐다.”

조지 소로스는 2007년 8월 미국 롱아일랜드 동쪽 끝에 위치한 자신의 사우샘프턴 사무실로 영향력 있는 월스트리트 투자자 20명을 오찬에 초대했다. 당시 경제 상황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한 것은 소로스와 또 다른 한 명의 투자자, 둘뿐이었다. 책에 따르면 소로스는 이 자리에서 ‘세상이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패러다임의 전환을 인식하고 신속하게 적응한 소로스는 부의 파괴가 제2차 대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진행됐던 2008년에도 10%에 가까운 수익률을 올렸다.

양극화라는 용어는 양극에 위치한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모두 문제를 안고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두 진영의 갈등을 암시하는 단어지만 이 책에서 제시하는 글로벌 신흥 갑부들은 일반 시민들이 더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 자료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세상은 두 블록으로 갈라지고 있다. 플루토노미와 그 나머지로’ 이들의 영향력은 경제의 전 영역에 파고들고 있기 때문에 플루토크라트에 대한 치밀한 분석 없이 각종 경제지표의 어두운 이면을 읽어내는 것은 어렵다. 오늘날 부자들은 과거의 부자들보다 더 부지런히 일하고,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파고의 정점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해가고 있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에 정부가 앞다퉈 내세웠던 민영화와 규제완화는 기술과 지식, 금융기법을 갖춘 사람들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했다. 한 경제전문가는 “지식과 정보 등이 소수의 부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최상위층의 갑부들은 이 같은 정보력과 돈의 힘을 이용해 교묘하게 거품을 일으켰다가 먼저 빠져나가는 전략을 구사한다”고 지적한다.

러시아는 시장체제로 이동한 지 10년 만에 17명의 억만장자를 낳았다. 하지만 그 사이 러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은 40%나 감소했다. 승자들에게 혁명적 변화의 시기는 기회의 원천이지만 패자들에게는 그저 재앙일 뿐이다.

예진수 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