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식 기자의 버디 & 보기>‘내셔널 타이틀대회’ 유감

골프에서 미국의 US오픈, 영국의 브리티시오픈, 그리고 일본의 일본오픈을 ‘내셔널 타이틀 대회’라고 합니다. 이들 내셔널타이틀 대회는 스폰서 이름이 붙지 않고, 돈을 주고 선수를 초청하지는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내셔널 타이틀 대회인 한국오픈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대회 명칭에 스폰서 명칭이 들어가고, 돈을 주고 유명 선수를 매년 초청합니다.

17일부터 충남 천안 우정힐스골프장에서 열리는 제56회 코오롱 한국오픈은 대한골프협회(KGA) 회장을 지냈던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남다른 애착으로 그동안 코오롱에서 타이틀스폰서를 맡아왔고, 세계 유명선수들도 초청해 왔습니다. 어니 엘스, 비제이 싱, 세르히오 가르시아, 닉 팔도, 리키 파울러, 로리 매킬로이, 존 댈리 등 ‘타이거 우즈와 필 미켈슨만 빼놓고’ 웬만한 스타들은 이 대회에 거액의 초청료를 받고 출전했습니다. 올해도 한국오픈은 어김없이 유명선수 중 매킬로이를 출전시키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사실 올해 한국오픈은 경제 상황도 안좋고, 대회 내실을 다지자는 취지로 별도 초청선수 없이 미국과 일본에서 활동중인 ‘토종 골프스타’들을 대거 초청할 계획이었습니다. 위기에 빠진 국내 남자대회를 살린다는 취지와 명분을 내세워 KGA와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는 해외파 선수들에게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초청에 기꺼이 응한 선수들도 있지만 최경주, 양용은, 배상문, 노승열 등은 “선수 나름의 입장도 있는 것 아니냐”며 예정된 다른 대회 출전 등을 이유로 불참키로 했습니다. KPGA투어는 ‘국내 투어에는 해외파 선수들의 의무 참가 조항이 없다’는 사실도 공개했습니다. 일본의 경우 자국 팬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선수마다 내셔널 타이틀인 일본오픈 등 2∼3개 대회의 의무참가를 명시해 놓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라는 설명입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도 한동안 의무출전 수를 정해놓기도 했지만 지금은 사라졌습니다.

상황이 이쯤되자 한국오픈 주최측은 기다렸다는 듯 매킬로이 출전카드를 꺼내든 것입니다. 국내파 톱클래스 선수들의 불참으로 자칫 한국오픈 기간과 겹쳐 열리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하나·외환챔피언십(인천 스카이72골프장)에 팬을 뺏기고, 흥행에 참패하지나 않을까 우려도 적지 않았을 겁니다. 한국오픈 주최측은 매킬로이는 5년 동안 3차례 출전키로 예전에 계약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몸 값은 최근 부진 탓에 올해 초의 ‘반 값’인 80만 달러 선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과 일본 등 해외 골프투어에서 한국 선수들이 잇따라 제패하고 있지만 아직 국내 골프대회만큼은 선수들의 수준을 따라잡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대회 한 개라도 더 만들려는 골프경기단체의 아쉬움을 지켜보면서, 언제쯤 한국의 내셔널 타이틀 대회도 자존심을 세울 수 있을지 답답하기만 합니다.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