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경기 파주 문산 변전소에서 개성공단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송전탑.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 갈등을 계기로 ‘송전선로 전자계 인체 유해 논란’이 일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아파트 앞에 송전탑이 있어요. 암 발생률이 높다는 소문이 있던데 어쩌죠?”
“최근 이사 온 집 근처에 송전탑이 지납니다. 국제암 단체에서 전자파를 발암물질로 분류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정말인가요.”
최근 대형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네티즌의 질문이다.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을 두고 전자계 유해성 논란이 일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내용이다.
인터넷은 물론 송전탑 갈등 당사자인 밀양의 일부 주민들도 송전선로의 유해성을 주장하면서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송전선로의 인체 유해성에 대해 부정했다.
안희성 기초전력연구원 스마트그리드 환경연구팀장은 16일 “현재까지 학계에서 꾸준히 조사해온 결과로는 송전선로 전자계 유해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전자계 생체영향연구협의회 이사로 활동 중인 김남(정보통신공학) 충북대 교수는 “송전선의 전자계는 유해성에 대한 근거도 없지만, (만일을 위해 정해둔)권고 기준보다도 크게 낮아 언급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조금 더 부연 설명하면 많은 사람들이 전자계가 인체에 유해할 것이라고 인식, 전세계 학계에서 꾸준한 연구를 진행해 왔지만 과학적 근거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송전선로가 위험하다는 인식이 높아진 것일까. 우선 일반인들이 가장 흔하게 오해하는 것이 ‘극저주파 전자계(전자계)’와 ‘전자기파(전자파)’를 혼동하는 것이다. 전자계는 넓은 의미에서 전자파에 속하지만 특성이 다르다. 송전선로에서 나오는 것은 전자계다. 이는 TV나 라디오 또는 휴대전화 등에서 사용되는 전자파와는 차별된다.
전자파는 초당 최소 9000번 이상 극성이 변하는 파동(WAVE)형태인 반면, 극저주파인 전자계는 단위시간당 주파수대역이 달라 극성변화는 초당 60번 미만에 불과하다. 전자파는 공간상에서 빛에 속도로 퍼져 나가지만 전자계는 멀리 전파되지 못하고 거리가 멀어지면 급격히 감소한다. 전자계는 사람이 변화를 느낄 수가 없을 정도로 파장 값이 적어 인체에 영향을 주기가 힘들다는 것이 학계 정설이다. 통상 유해전자파는 150㎑(초당 15만 번 진동) 이상의 파동을 가졌을 때로 규정하고 있다.
안 팀장은 “전자파는 에너지 밀도가 높아서 장시간 노출되면 세포의 단백질 변성 가능성이 있어 유해하다는 것이 입증됐다”며 “그러나 전자계는 에너지 밀도가 낮아 단백질 변성을 일으킬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송전탑에서는 유일하게 60㎐의 극저주파가 나온다”며 “지금 송전탑에서 나오는 값으로 비교하자면 집에서 사용하는 TV 등의 전자기기보다 더 약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자계도 유해성 논란은 있었다. 1979년 미국의 워스하이머(Wertheimer) 박사는 송변전소 주변에 거주하는 어린이의 백혈병 발생이 다른 지역 어린이에 비해 약 2배 높다는 역학연구를 발표하면서 국제적인 논란이 시작됐다. 다만 연구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됐고 이후 30년간 국제적으로 꾸준한 연구가 있었지만 현재까지 유해성이 밝혀지지 않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8개 국제기구, 8개 국제연구기관, 세계 54개국이 공동참여하는 ‘국제 전자계 프로젝트’를 만들어 1996년부터 2007년까지 12년간 유해성 연구를 진행했다. 이 결과 WHO는 전자계 중 ‘전계’는 건강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반면 ‘자계’의 경우 높은 수준의 강한 노출은 영향이 있다는 판단에 따라 국제노출가이드라인(일반인 83.3마이크로 테슬라(μT), 직업인 416.7μT)을 준수하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WHO는 이 같은 가이드라인도 이후 동물연구 등을 통해 생체작용 영향이 적다는 결과를 반영하면서 2010년에 일반인 200μT, 직업인 1000μT로 기준을 완화시켰다. 그럼 국내 송전선의 자계는 얼마나 될까. 한국전력공사가 전국 송전선로 208개소 밑에서 자계를 측정한 결과 평균 1.94μT로 나타났다. 전압규모별로 765㎸는 평균 1.41μT, 345㎸는 1.98μT, 154㎸는 1.40μT로 측정됐다. 또 전국 송전선로에서 가장 근접한 아파트, 학교, 유치원, 병원 등의 건물 258개소를 측정한 결과 평균 자계값은 0.28μT였으며, 최대 측정값은 8.4μT로 나타났다. 미국국립환경 건강과학연구소에 따르면 가전제품의 자계값은 헤어드라이어(70μT), 전기면도기(50μT), 청소기(20μT) 등이다.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자계를 발암물질로 분류했다는 논란도 확대 해석된 부분이 크다. IARC는 1971년부터 2008년까지 953개의 물질을 평가해 발암물질(1군), 발암 가능성이 높은 물질(2A군), 발암 가능성을 고려하는 물질(2B군), 발암물질로 분류가 곤란한 물질(3군), 발암물질이 아닌 물질(4군) 등 5개 군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중 자계는 ‘역학적 및 동물실험 결과상 그 증거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발암 가능성을 고려하는 물질’인 2B군이다. 2B군에는 오이피클, 커피, 젓갈, 고사리 등도 함께 있다. 즉 발암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없음에도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인식에 따라 분류된 군이다.
의학계도 2A군 이상을 발암물질로 보고 있다. 전압 규모가 765㎸인 밀양 송전탑은 기존 345㎸와 달리 자계가 더 높을 수 있다는 견해도 오해에 기인한다. 자계의 세기는 전압이 높다고 큰 것이 아니라 전류의 양과 거리에 따라 다르다. 765㎸의 경우 345㎸송전탑보다 더 높기 때문에 자계의 세기는 765㎸송전탑에서 더 작게 측정될 수도 있다.
이용권 기자 freeuse@munhwa.com
;){kind=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