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 155곡에 담긴 恨·사랑·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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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따라 삼천리/정두수 지음/미래를 소유한 사람들

타고난 목소리, 잘생긴 용모 등 가수로서 완벽한 자질을 갖춘 남인수. 하지만 첫 취입곡 ‘눈물의 해협’이 흥행에 실패하자, OK레코드 이철 사장이 작곡가 박시춘에게 찾아가 “다른 가사를 붙여보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작사가 이부풍에게 의뢰해 다시 태어난 곡이 ‘애수의 소야곡’이다. 박시춘-남인수 30년 콤비의 서막이었다.

어느 날 설렁탕집 주인이 마포종점에 살았던 연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국으로 유학 간 남편이 뇌졸중으로 죽자, 아내는 신혼 초 시절을 떠올리며 마포종점에 나가 미친 듯 배회하고 다닌다. 결국 아내는 어느 순간 마포종점에서 종적을 감추고 만다. 1966년 어느 날 밤, 궂은비를 맞은 작사가 정두수가 애절한 연인의 사연을 담은 ‘마포종점’ 노래시를 썼다.

1년 여간 문화일보에서 ‘가요 따라 삼천리’를 연재한 작사가 정두수가 ‘노래 따라 삼천리-남인수에서 조용필까지’를 내놓았다.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 남진의 ‘가슴 아프게’,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 들고양이들의 ‘마음 약해서, 조용필의 ‘잊기로 했네’ 등 주옥같은 히트곡들이 모두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지금까지 쓴 시와 가사만 3500여 편에 이른다.

가요계의 산증인이 들려주는 이 생생한 이야기들은 독자들에게 일제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요’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근현대 100년을 관통하는 생생한 시간여행을 떠나게 하는 계기를 선사한다. 책에는 한국 최초의 대중가요 ‘강남달’에서 조용필의 ‘바운스(Bounce)’까지 지난 100년 동안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주옥같은 가요 155곡이 담겨 있다.

히트곡에 얽힌 사연뿐만 아니라 무대 뒤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당대 음악인들의 인간적인 면모와 매력, 그리고 풍류를 재발견하게 해준다. 포복절도할 만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한국 최초의 직업가수이자, 대중가요 효시 격인 ‘희망가’를 취입한 채규엽은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숯가루를 발랐다. 공연 도중 폭소가 터져 나왔다. 채규엽의 새까만 머리가 훌렁 벗겨지고 있었기 때문. 이날 그가 대머리를 감추기 위해 머리에 발랐던 숯가루가 땀에 씻겨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당시 음악저작권협회와 작가동지회, 창작분과위원회 등 음악 관련 단체와 레코드사, 영화사 등이 몰려 있던 서울 인현동은 ‘스카라 계곡’으로 불린다. 작사가, 작곡가, 가수, 음반제작자들이 한데 어울려 가요의 꽃을 피워내는 창작의 산실이었다. 이 계곡을 누비며 왕성하게 활동하다 서른여덟 나이로 요절한 작사자 월견초(본명 서정권) 이야기가 애달프다.

“월견초는 공짜 인생을 살았다. 인현동 목욕탕에서 공짜 목욕으로 하루를 열었다. 목욕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울 곳곳을 바람처럼 누비고 다녔다.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많았던 ‘김삿갓’이 아닌 ‘월삿갓’. 밤이 되면 그의 발길은 어김없이 ‘스카라 계곡’으로 향한다. ‘늦어서 죄송합니다’는 월견초의 전매특허였다. (중략)가요작가들이 일찌감치 진을 치고 있는 술집을 그는 귀신같이 찾아냈다. 물론 ‘불청객’이었지만 ‘늦어서…’라는 말 한마디로 끼어드는 넉살이 있었다.” 당시 스카라 계곡을 드나들던 가요인들의 술자리는 악기가 필요 없었다. 술잔, 주전자, 냄비, 젓가락, 이 모든 것이 훌륭한 악기였다. 그는 효과음을 내는 데도 도사였다. ‘무정열차’와 ‘울리는 경부선’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부를 때면 기적소리와 열차가 플랫폼을 미끄러지는 바퀴소리를 기가 막히게 흉내 냈다.

책에는 1960년대 농경 사회 해체기에 드러난 민중의 삶, 산업화 시대 힘들고 고단했던 한국인의 고뇌 등이 작가의 따뜻한 정감과 위로의 시선으로 투영됐다. 일제강점기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 가요의 100년 역사가 오롯이 담겨 교육적 가치도 충분하다.

김고금평 기자 dann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