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고 금지하고 태워도… 권력은 冊을 이기지 못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교회나 지배세력에 대해 담대한 비판을 한 책들이 독일과 영국 등지에서 공개 처형을 당했다. 사진은 1661년 영국의 서적 처형 장면. 시공사 제공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781년 가톨릭 금서목록 표지(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포함된 금서목록(가운데). 1925년 ‘개의 심장’에 대한 러시아의 출간 불가 메모(아래). 시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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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의 역사 / 베르노 풀트 지음, 송소민 옮김 / 시공사

불온이란 딱지가 붙은 채 금지되고 숨겨지고 불태워졌던 책의 방대한 역사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아우구스트 황제에서 최근까지 종교적인 이유로, 이념적인 이유로, 퇴폐와 음란을 이유로 금지되거나 불타 버린 책을 한 권 한 권 불러내서 전후의 역사적 사실과 금서가 되는 과정,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금서의 역사는 인간의 기록의 역사와 거의 비슷하다. 기원전 3000년 고대 이집트 파라오들이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선왕의 이름을 파내게 한 이래 지금까지 갖가지 이유로 무수한 금서가 있었고 수많은 책이 불태워졌다.

로마시대에는 철학적 토론이 이교(異敎)의 뿌리가 된다는 이유로, 경험적 지식은 창조론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금지되면서 수많은 문헌과 책들이 잿더미가 됐다. 신앙교리와 일치하지 않는 내용의 모든 책은 ‘악’이었다. 이성을 일깨우는 책을 불태우고, 심지어 성경책을 읽는 것조차 금지시킴으로써 독자적인 생각의 씨앗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종교권력은 강화됐다. 대제국을 건설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지은 무세이온 도서관이 보관하던 40만 편이 넘는 필사본과 9만 개의 두루마리 문서가 기독교 광신자에 의해 한꺼번에 불살라진 사건도 이의 연장선상이었다.

종교적인 이유로, 정치적인 이유로, 권력 유지의 방편으로, 사회질서 수호를 이유로 자행되고 있는 금지의 역사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저자는 무수한 금지의 사례와 에피소드 등을 통해 왜 무엇 때문에 금지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는지, 그리고 금지를 명령하는 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감추려고 하는지 등을 살피고 있다.

책은 저자가 ‘가장 강력한 금지’라고 규정한 자기검열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스스로 검열자가 돼서 책을 감추고 불태웠던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다.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은 임종을 앞두고 작품과 일기, 편지 등 자신이 남긴 모든 글을 불태워 달라는 카프카의 유언을 따르지 않은 유산관리자에 의해 구할 수 있었다. 마거릿 미첼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단 한 권의 책을 쓴 작가로 추앙받기 위해 이전에 썼던 모든 작품을 스스로 없앴으며 자신이 죽은 뒤에 발견되는 작품도 모두 없애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의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는 한 발 더 나갔다. 출판사와 합작으로 이 작품을 ‘평범한 독일군이 쓴 실화’라고 홍보해 큰 성공을 거둔 뒤, 자신이 작가이고 책 내용이 가상의 내용이란 사실을 숨기기 위해 앞서 출판된 2편의 소설과 300편에 이르는 글을 모두 사들여 폐기하기도 했다. 찰스 디킨스의 경우는 작품이 아니라 편지를, 죽을 때까지 모두 불태웠다. 그는 문학적 상상력이 고갈돼 말년에 상상력이 풍부한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했다. 후대에 흠 없는 신사이자 독특한 아이디어를 가진 유일한 작가로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은 기념비적인 명작으로 평가받는 책들도 출간 당시에는 버젓이 금서의 목록에 올랐다. 금지의 이유는 다양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자살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는 음란성을 이유로, 클라우스 만의 ‘메피스토’는 실제 인물을 소설 속 인물에 빗대어 묘사하면서 사생활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금지된다. ‘보바리 부인’은 주인공이 불륜을 저지른 뒤에 더 아름다워졌다고 묘사한 대목이, ‘호밀밭의 파수꾼’은 열여섯 소년이 창녀에서 동정을 잃은 장면이 문제가 됐다.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건 책을 금지하고 숨기고 불태우면서 작가의 존재와 이념을 지워 버릴 수 있다고 믿었던 권력자들의 확신은 전적으로 틀렸다는 것. 시대를 가리지 않고 금지된 책 중에서 읽히지 않은 게 없었고, 압류된 책은 어디서나 찾을 수 있었다. 모든 법적 조치를 통한 금지에도 불구하고 금지된 책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이유다. 따라서 금서의 역사란 책의 소멸의 기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에 대항해서 언어가 거둔 승리의 연대기이자 인류 기억의 생존사’에 다름아니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책에 소개한 2000년 전 로마제정시대의 역사가 타키투스가 남긴 불멸의 두 문장. “한순간의 권력이 미래 시대의 기억마저도 지울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의 어리석음을 실컷 비웃어도 좋다. 권력자들은 스스로 수치에 도달하고 처벌당한 자의 명성은 커질 뿐이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