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에게 띄우는 ‘시인의 이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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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13-11-0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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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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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강아지의 만남’을 다룬 이색적인 산문집이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 조은(53·사진) 시인은 최근 펴낸 산문집 ‘또또’(로도스)에서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 또또와의 17년간에 걸친 사랑과 이별의 드라마를 진솔하게 털어놨다. 시인이 또또를 만난 것은 자신이 새로 이사한 서울 종로구 사직동의 개량한옥에서였다. 첫 만남을 시인은 이렇게 추억했다.

“그때였다. 갈색 실꾸리 같은 것이 흩날리는 나뭇잎 사이에 끼어 내 쪽으로 굴러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곧 그것이 둥글게 오므라들며 마른 큼직한 플라타너스 잎이라고 생각했다. (중략) 뭔가가 이상해 허리를 굽혀 발치를 내려다보던 순간, 깜짝 놀랐다. 갈색 나뭇잎이거나 실꾸리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너무도 예쁘게 생긴 작은 강아지였다. 나는 그때껏 그렇게 예쁘게 생긴 강아지를 본 적이 없었다. 강아지는 상냥하고, 명랑하고, 예쁘고, 포근하고, 사교적이었다.”

하지만 시인은 선뜻 강아지를 가슴으로 안아주지 못했다. 어린 시절, 집에서 키우던 개와 관련한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이 열 살 무렵 집에서 키우던 사랑스러운 강아지 마루는 어느 날 아버지 친구들의 술안줏거리로 넘겨졌던 것이다. 시인은 “내가 동물들, 특히 또또에게 마음을 주지 않으려 했던 것은 그들의 운명을 잘 알았기 때문”이라며 “또또 역시 내가 그동안 무수히 보았던 동물들이 피할 수 없었던 운명의 길을 가야 할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다 시인은 어느 날 우연히 또또가 주인집 식구들로부터 맞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또또는 심한 구타와 탈골로 인한 통증에 시달리면서 병들어 갔다. 시인은 이런 또또를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해 주고, 자신의 방에서 같이 자면서 천천히 마음을 열게 된다. 또또는 시인과의 인왕산길 산책을 통해 큰 위안을 얻게 되고, 시인의 방에 들어와 있는 시간이 점차로 길어졌으며 어느덧 완전히 한식구로 살기에 이른다.

2012년 6월 19일은 시인과 또또가 마지막으로 인왕산을 산책한 날. 이날 이후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던 또또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만다. 시인은 또또에게 이렇게 작별인사를 했다. “미안해… 또또야, 넌 정말 훌륭한 개였어. 정말 멋있고 착했으니까 아주아주 좋은 곳으로 갈 거야.”

김영번 기자 zero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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